한국일보 2015-8-6
이날 박 대통령 담화는 오직 '개혁'과 '경제'였다. 물론 우리 경제가 급속히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고, 앞으로 3~4년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며, 그래서 경제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절박한 상황인식은 틀리지 않았다. 그를 위해 공공ㆍ노동ㆍ교육ㆍ금융의 4대 구조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것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목표설정이다. 비록 그 내용이 이미 임기 초부터 수없이 해온 반복인데다 특별히 새로운 사안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임기 내에 이중 한 두 개만 달성할 수 있어도 크게 평가 받을 것들이다.
정작 문제는 익숙한 정책목표의 재강조가 아니라 달성을 위한 구체적 방법이다. 노동개혁만 해도 기성세대와 정규직 등이 기득권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비정규직, 취업기 청년들의 이해를 정밀하게 반영해야 가능한 것이다. 4대 개혁 모두가 다르지 않다. 최악의 상황은 어렵다고 해서 조정을 쉬 포기하고 대통령과 정부 뜻대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곳곳에서 엄청난 반발로 후유증이 감당 못할 만큼 커질게 뻔한데다, 목표에 근접도 못한 채 실패하기 십상이다. 결국 후반기 국정도 혼란 속에 표류하고 정권은 또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다시 설득과 소통의 노력이다.
박 대통령도 모두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도 국민 여러분의 협조와 협력이 절실하게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 협조는 일방적 당부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정책목표를 설득하고, 다방(多方) 소통을 통해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진정성은 솔직한 자기 점검과 반성 위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메르스 사태 같은 명백한 과오조차 비켜가면서 진정성을 알아주고 협조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이날 모처럼의 담화가 별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곧 또 있을 8ㆍ15 담화에라도 반성과 변화의 모습을 담을지 한번 더 기다려볼 참이다.
[사설] 노동개혁, 대통령이 악역 피하지 않아야 성공한다
중앙일보 2015-8-7
노동개혁이 국정 핵심 목표로 잡힌 것은 필연이다. 빈사 상태인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남미식 절름발이 국가로 몰락할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지 여부가 노동개혁의 성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성장 시절에는 우리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은 지구촌 모든 나라들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경제 규모가 줄고 있다. 우리의 핵심 시장인 중국도 휘청댄다. 산업화 이래 처음으로 제 살을 깎아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국가파산을 당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런 만큼 노동개혁의 대의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이해당사자 모두가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저항할 게 뻔하다. 이미 임금피크제와 고용 요건 완화에 반발해 노사정위원회를 이탈한 노동계는 협상이 재개돼도 정부나 경영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하며 시간만 끌려 할 우려가 높다.
야당 역시 대안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반대로 일관할 공산이 크다. 롯데 사태를 계기로 “재벌개혁부터 먼저 하자”고 제안한 것부터 그렇다. 이런 거대담론을 국회에서 다뤄봤자 답이 나오겠는가. 야당이 이렇게 물타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총선까지 시간을 끌면 개혁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도 미덥지 못하다.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연발하는 것부터 총선을 의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노동개혁의 입법과 집행에 가장 중요한 일꾼인 공무원들 역시 얼마나 적극적으로 뛸지 불투명하다. 힘들고 욕먹기 좋은 노동개혁은 시늉만 하면서 적당히 넘기고, 다음 정권까지 자리나 보전하는 게 상책이라 여기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결국 노동개혁은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직접 나서야만 성공할 수 있다. 여당이 앞장서고 대통령은 뒤에서 지시만 한 결과 공무원연금 개혁이 반쪽 개혁에 그치고 만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노사의 입장을 경청하고 고통 분담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인정하면서 개혁 동참을 호소할 필요가 있다. 또 열심히 뛰는 담당 공무원에겐 포상을 아끼지 말되 면종복배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벌해 개혁의 영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청와대가 여당과 혼연일체를 이뤄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개혁 논의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이어지면 대통령과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노동개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달력이 총선의 해인 내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개혁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스웨덴 등 노동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은 지도자가 지지층과 반대 세력 양쪽에서 욕을 먹었음에도 악역을 피하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전 스웨덴 총리는 2006년 집권하자마자 “스웨덴이 ‘과(過)복지’란 에이즈에 걸려 있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야당과 노동계가 펄펄 뛰었지만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일자리가 급증하자 스웨덴 노총은 “라인펠트가 옳았다”며 자진해서 임금을 낮췄다. 진보계열 사민당 출신인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도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개혁을 밀어붙여 실업률을 6%포인트나 줄였다. 이에 힘입어 후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경제를 유럽의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 지도자도 이처럼 악역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개혁에 나설 때 믿을 곳은 결국 국민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면 개혁은 저절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려면 박 대통령 스스로 변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이번까지 합쳐도 취임 이후 네 차례에 불과하다. 담화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 대해 한마디 사과조차 없이 넘어간 것도 아쉽다. 이렇게 국민과의 소통에 인색하면 아무리 뜻이 좋은 개혁이라도 민심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노동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스킨십을 넓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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