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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메르스 정보'를 국가 자산 만들자

바람아님 2015. 8. 11. 07:43

(출처-조선일보 2015.08.11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감염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 방역 전쟁을 통해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체계적인 메르스 

데이터베이스를 갖게 되었다. 바이러스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환상적인 수준의 연구 재료가 생긴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추진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도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가 침투하게 되면 우리 몸은 단계별로 이에 반응한다. 초동 대응에서는 경계병 

역할을 하는 각종 세포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우리 몸의 여러 곳에 위기 상황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한다. 

이를 염증반응이라 하는데 이때 열이나 몸살이 수반된다. 

CTL이라 불리는 전투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세포만 골라 죽여버린다. 

이후 면역사령부는 엄청난 숫자의 보병, 즉 항체들을 보내 바이러스와 전면전을 벌인다. 

효과적 백신이라면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이들을 막아낼 수 있는 항체나 CTL을 신속히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감염자들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엄청나다. 일단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생존한 사람이 150여 명이다. 

우리는 그들의 병력(病歷)을 소상히 알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인체 면역의 관계를 정밀분석할 수 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항체는 연구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감염자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기 때문에 건강 상태와 

바이러스 양의 관계, 사망자와 생존자의 차이점도 조사할 수 있다. 나아가 중화 항체를 생존자에게서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도 고안할 수 있다. 감염자들 스스로가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에 참여한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방역 당시 얻은 데이터와 경험을 체계화하면 우리는 전 세계에 메르스 대비 매뉴얼을 제공할 

수 있다. 이들 검체와 데이터는 국제 협력사업에서 협상의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국가적 자산으로 사용되려면 몇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메르스 관련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사업단이 필요하다. 

방역과 R&D는 인프라와 인력은 물론 과학적 방법론 자체도 매우 다르므로 이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좋다. 

국가 예산이 또다시 이해 당사자들 간에 적당하게 분배되는 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과제의 상당 부분을 하향식으로 

기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더라도 메르스 R&D 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 기술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엮어서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드는가이다. 

따라서 신규 예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벌어지는 부처 간 갈등, 즉 이번 경우에는 질병관리본부와 국립보건원의 역할 

분담, 그리고 연구자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메르스 사태가 한국의 자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끝날 것인가는 정부 손에 달려 있다. 

아무쪼록 정부 어디라도 중심을 잡고 선진국으로의 도약 기회로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