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얼빠진 정부 안보라인 이대로는 안 된다

바람아님 2015. 8. 14. 10:01

[사설] 얼빠진 정부 안보라인 이대로는 안 된다

 

 중앙일보 2015-8-14

 

과연 이 정부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할 능력이 있는가.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정부 대응의 난맥상을 보면 대답은 ‘아니오’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해 사태를 키웠던 정부가 국가의 존위가 걸린 안보 문제에서조차 허둥대며 적절한 대책은커녕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안보의 컨트롤타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다. 국가안보실장을 상임위원장으로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모두 참여한다. 국가안보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긴급히 NSC를 소집해 정부 차원의 종합적 판단을 하고 부처 간 업무를 조율하는 게 임무다. 그렇게 해서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대책을 제시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폭발한 지뢰가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국방부가 확신했다는 4일 오후 늦게라도 NSC 회의가 소집돼 논의를 했다면 통일부가 다음날부터 매일 북측에 고위급 회담 제안을 하는 ‘코미디’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위급 회담이야 언제고 열려야 하겠지만 수색대원 2명이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할 제안은 아니다. 게다가 8일 NSC 회의가 열렸는데도 통일부가 10일까지 서한 전달을 시도한 것을 보면 회의에서 뭔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NSC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냐”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질책이 당연하다 못해 너무 점잖다.

 

 책임 부서이자 NSC 상임위 멤버인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청와대에 보고한 날짜조차 착각하고 있다. 4일 보고했다고 하다가 청와대가 “‘원인 미상의 폭발’이란 보고는 4일이며 ‘도발 추정’ 보고는 5일”이라고 반박하자 그제야 실수라고 말을 바꿨다. 마치 청와대와 국방부가 책임공방을 벌이는 듯한 모양새다. 경계 실패 지적에는 초목 제거라는 재탕 대책만 언급할 뿐이다.

 청와대 보고 논란도 처음이 아니다. 중대한 일이 벌어지면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당연한 건데 우리는 늘 대통령 보고 여부가 문제가 된다. 대면보고를 꺼리는 대통령의 태도 탓이다.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장관이 정부 수반인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고 ‘문고리’를 통해야 하니 타이밍도 늦고 혼선도 생기는 것이다. 국가 일을 남 얘기 하듯 하는 대통령의 어법 또한 그런 보고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심포지엄 축하 메시지에서 “북한 군사 도발의 궁극적 해결책은 평화통일”이라고 말했다. 앞서도 “도발 대처와 평화 구축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우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평화통일은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튼튼한 안보의 반석 위에서만 평화가 가능하고 숱한 위기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통일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얼빠진 NSC 핵심 안보 지휘라인으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 늦기 전에, 더욱 중차대한 안보 위기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여의춘추-김명호] 이런 국가안보실 필요한가

국민일보 2015-8-14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나흘 만에 열렸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복잡한 안보 현실상 대응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국방부 대책도 예전의 것들과 거의 같다. 도발이 있었음에도 통일부 장관은 남북고위급 회담을 제안하고, 반대로 국방부 장관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병사의 다리가 절단됐는데 대통령은 북한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했다. 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정황들이다. 관련 부처가 정보를 서로 숨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여권 일각에서는 북한 소행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수색대 임무를 해온 베테랑 수색팀장 정교성 중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적의 공격”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당일(지난 4일) 오후 북한 도발 가능성을 아주 높게 봤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우리 수색로에서 두 번이나 지뢰가 폭발했다면 도발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대응 수위 조절 및 상황별 대처를 위한 NSC는 작동됐어야 한다. 혹시 상황을 냉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결론을 늦췄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만약 그랬다면 옳든 그르든 그나마 상황 관리를 위해 전략적 검토를 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NSC 상임위원장인 김관진 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 시절 줄기차게 주장했던 ‘도발 원점-지원 세력-지휘 세력 타격’은 또 허언이 됐다.

 

통일부와 국방부의 엇박자 대응,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을 놓고 일각에서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얘기한다. 어이가 없다. 투트랙은 정책에 관한 것이다. 주로 북핵 문제를 두고서다. 이번 건은 국토를 지키는 우리 병사를 살상하기 위한 군사적 도발이다. 비슷한 수준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투트랙 주장은 안보 대응 시스템의 실패, 안이한 판단을 덮기 위한 교언이다. 강경 대응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자기 병사들의 목숨을 노리는데 매번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안보라인은 신뢰를 받지 못한다.

 

안보라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본질이 아닌 청와대 보고 시간이 또 문제가 된다. 한 장관은 국회에서 청와대 보고 시점을 4일 오후라고 답변했다가 하루 뒤 5일이라고 수정했다. 단순 착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었지만, 그렇다면 지뢰 도발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을 하고도 즉각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번 도발은 사망자만 없을 뿐 북한군의 기습이란 점에서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똑같이 엄중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직접 통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문제다. 안보실장이 보고를 했다는데 보고 단계만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 안보실 기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접적 지역에서 병사가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는데도 특별한 반응이 없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대통령은 국가 최고 리더십으로서 초기에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상황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의 도발 상황에서 국민에게 각인되는 군통수권자로서의 존재감은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정치가 아니라 진정으로 병사들과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지뢰 도발에 대한 대처 과정은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안보실이 이렇게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드러냈다. 시스템이든, 사람이든 안보라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김명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