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9-08

창조과학이 기만인 이유는 이렇다. 상징과 비유로 해석하면 되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있다. 글자 자체에 권위와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인데, 이건 신비주의자의 태도지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과학적 성과를 도끼눈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믿음보다는 비판으로 대상을 대하고, 입증보다는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문헌을 검토한다.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제하고 그걸 나서서 입증해 주려는 태도는 과학자 사회에서는 발붙일 틈이 없다. 그런데도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의 유사과학을 믿는 이들은 오직 책에 적힌 문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야한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스스로에게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7월 중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보낸 무인 탐사선 뉴허라이즌스호가 명왕성과 그 위성을 근접 비행했다. 사진 등 관측 자료를 지구로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명왕성 표면이 젊다(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관측 결과가 포함돼 있었다.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의 유사과학을 믿는 이들은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우주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자신의 주장에 은근슬쩍 연결시키는 게시물을 작성해 홈페이지에 올렸다. 어물쩍 묻어가기다. 그 창조적 민첩함과 과감함은 칭찬할 만하지만, 과학적인 대응은 전혀 아니다.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의 유사과학은,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과학에는 더더욱 속하지 않는다. 그냥 믿음이다. 그리고 그 수준은 유니콘이나, 동양 기서 ‘산해경’ 속의 생물이 존재함을 믿는 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체계라고 할 만한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 반대 사례를 통해 논리의 오류를 짚는 귀류법을 의도하는 듯한데, 미안하지만 과학적 이론들은 세계 수천, 수만 과학자 사회의 도끼눈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다. 몇몇 문헌을 아전인수로 끼워 맞춘다고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화나 빅뱅에 맞설 학설로 대등하게 다뤄 달라는 주장에 이르면 그 파렴치함에 화가 날 지경이다. 자신 있으면 뒤에서 운동을 하지 말고 지식이 형성되는 장에서 논문으로 제대로 겨뤄 보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창조과학 관련 과목이 연세대 공대에서 개설돼 논란이다. 논란이 일자 제목에서 창조과학이라는 말을 뺐지만, 7일 확인 결과 강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교수의 개인적 신념까지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반과학적인 주장을 일방적으로 담은 유사과학 과목을 대학에 개설하는 것은 재고돼야 할 것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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