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5 추석특집 | 문화일보 : 2015년 09월 24일(木) |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71)가 2012년, 자신의 나이 68세에 내놓은 소설 ‘몸의 일기’는 출간 당시 현지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럴 만하다. 이는 한 남자가 10대부터 87세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몸의 상태, 몸의 변화, 몸이 보내는 신호를 관찰해 기록한 일기이기 때문이다. 지성사에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삶과 사유를 담은 일기, 존재의 내면을 기록한 일기는 숱하게 있었고 그중 몇 편은 명작이 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몸에 대한 일기’는 없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하면 이제까지 ‘몸에 대한 일기’가 없었다기보다 이제야 ‘몸에 대한 일기’가 절실해졌다.
시대적 수요, 요청이랄까. 고령화 시대에 나이 듦, 늙음,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의학, 성형과 몸만들기로 시간을 거슬러가려는 욕망이 들끓는 시대, 몸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예민하게 감지하는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7월 중순 국내 출간된 책은 한 달 만에 초판 3000부를 소화하고 재판에 들어갔다. 주 독자층은 30대 후반~ 40대 이상. 역시 몸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하는 나이다.
일기의 주인공인 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산송장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자식을 낳음으로써 남편을 회생시켜보겠다는 희망을 품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열정이 살아나지 않자 어머니는 그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나’는 존경하는 아버지를 흉내 내게 되고, 아버지에게 수준 높은 교양 교육을 받으면서 정신만 성장하고 몸은 거의 없다시피 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12세 때, 몸에 대한 참혹한 경험을 계기로 몸에 눈을 뜨고,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 경험이란 12세 때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참가했다가 친구들에 의해 나무에 몸이 묶이고 죽음의 공포 속에 바지에 똥을 싼, 육체적 치욕이었다.
그 뒤 일기는 첫 몽정(13세), 첫 키스(23세), 첫 사랑(26세), 첫 아기의 탄생 (28세), 첫 외과 수술(27세), 오른팔에 생긴 검버섯(44세), 노안(45세), 손자의 탄생(53세),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날(62세), 동생의 죽음(75세), 손자의 죽음(79세)을 거쳐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이명, 건강염려증, 구토, 티눈, 월경, 불안증, 성 불능, 불면증, 몽정, 자위, 섹스, 비듬, 코딱지, 현기증, 악몽, 위내시경 검사, 건망증, 몸을 긁는 쾌감, 오줌 누는 기술, 똥의 모양, 코피, 설태, 전립선비대증, 수혈, 치매 등 몸과 관련된 온갖 증상과 변화가 기록된다. 전체적으로 청년기까지는 몸에 대한 발견이 즐거움, 놀라움, 호기심의 대상이라면 40대를 기점으로 이는 두려움, 당황스러움, 고통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두려움을 넘어 몸의 변화와 쇠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나아간다. 따라서 일기는 몸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서 시작해 몸에 대한 관조적 관찰과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 난 내 몸을 관찰해보고 싶다. 아직도 내 몸이 속속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 연구가 아무리 진척되었다 해도, 이 낯선 느낌을 없애주진 못할 것이다.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17세엔, 몸에 대한 탐구 의지가 넘쳤다. 하지만 40대를 기점으로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예견한 대로 불안 발작이 일어났다. ···불안은 존재론적인 병이다. 너 무슨 문제 있는 거야? 아무 문제 없어? 아니 전부 다 문제로군.”(43세 8개월) 크고 작은 노화 현상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의 불안은 정점에 달하지만 결국 그는 이 모든 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내 이명, 내 신트림, 내 불안증, 내 비출혈, 내 불면증 결국 이것들이 내 자산인 셈이다. 수백만 명의 삶과 함께 공유하는.” (49세 28일) 또 이렇게 써내려간다. “이명이 다시 돌아온 게 틀림없다. 이런 사소한 병들은 처음 생겼을 땐 엄청나게 겁을 주지만 점차 길 친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고, 결국 우리 자신이 되어버린다”(72세 9개월). 몸은 점점 퇴화하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고도 하고, 육체적 사랑에 대한 욕망은 소멸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발견했다고도 한다. “쉼 없이 짝짓기를 하던 우리 몸이 온기만으로도 쾌감을 느끼게 되는 상태로 자연스레 옮겨가게 된 과정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욕망이 점차 약화되어 갔다고 해서 좌절을 했다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린 서로의 몸을 안아준다. 벗은 살이 맞닿으며 열기에 휩싸이고 숨과 땀이 뒤섞여 우리의 욕망은 우리 사랑의 향기로운 보호를 받으면 꺼진다.”(66세 10개월)
혈액병으로 6개월 시한부 선언을 받은 그는 화학 치료를 거부하며 노쇠한 몸으로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는다. 점점 짧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의 현기증, 굳어버린 정맥 또다시 비대해진 전립선, 쉰 목소리, 백내장 수술, 광시증, 자꾸만 헐어 달걀노른자처럼 돼버린 입술 가장자리, 바지 입을 때의 어설픈 동작, 자꾸만 잊고 잠그질 않는 바지 앞 지퍼···.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모든 이의 숙명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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