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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딱 두 시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 온다

바람아님 2015. 10. 30. 01:32
조선일보 2015-10-29

한적했던 제주도 포구 마을 방파제에 장이 섰다. 이름도 낯선 '벨롱장'. 벨롱은 제주 말로 '작은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을 뜻한다.

24일 오전 9시 30분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 방파제 길 초입에 좌판과 돗자리를 들고 나타난 '벨롱다리(벨롱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딴 판매자)' 수십 명이 늘어섰다. 장이 열리는 오전 11시가 가까워져 오자 줄은 더 길어졌다. 이들은 참가비 5000원을 낸 뒤 각자 '명당'을 찾아 판을 벌였다.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150m의 시장에 어디서 듣고 왔는지 사람들이 몰려왔다.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좌판들에는 직접 만든 팔찌와 목걸이, 가방, 목공예품 등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즐비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허니버터 문어구이, 떡볶이, 제주 감귤 주스 등 먹을거리도 한가득 자리를 차지했다. 한 판매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가져왔다는 돌을 남미 산(産) 실에 꿰어 팔찌와 발찌를 만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500원짜리 마시멜로를 나무막대에 꽂아 구워먹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111팀의 판매자들도 수백명에 달하던 손님들도 모두 사라졌다. 방파제 길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서.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모이는 아트장터

이날 만난 벨롱장 운영진은 "자신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있다면 벨롱장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벨롱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품목은 '제주바당'이란 이름의 향초다. 유리컵 안에 모래를 깔고 드라이플라워와 조개껍데기를 놓은 뒤 투명한 젤을 부어 만든다. 개당 2만원 정도 하는 제주바당 캔들을 4개 집어 든 여행객 이원선(35)씨는 "방 안에 두고 불을 피울 때마다 제주도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손안에 제주 바다를 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장이 열린 지 1시간 만에 동나 뒤늦게 벨롱장을 찾은 손님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할 정도다. 3000~5000원 하는 손글씨 엽서도 인기.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하면 어디든지 꽃길' '그대처럼 빛나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문구 앞에 오래 머물렀다. 제주도에서 나는 조가비로 만든 귀걸이와 반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벨롱장은 2012년 세화리 인근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공방 등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자신들이 갖고 온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조그만 벼룩시장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판매하는 물품도 늘어나면서 운영진은 아트마켓 성격을 강화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플리마켓이 늘어나면서 벨롱장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판단이었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라고 소개한 김세은(36)씨는 "벨롱장 말고 다른 플리마켓에는 판매자로 등록했는데 벨롱장에서는 반려당하고 있다"며 "질 좋은 물건들이 팔리다 보니 사람들이 계속 벨롱장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참가하는 판매자는 100~130팀 정도다.


◇가기 전 '장서는 날' 꼭 문의해야

벨롱장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화포구에서 열린다. 하지만 변수가 많다. 인근 재래시장인 세화5일장과 겹치면 열리지 않고, 비가 내려도 취소된다. 겨울에는 열지 않는다. 당일 오전에 우천으로 취소가 되다 보니 공식 홈페이지를 수시로 체크해보는 게 허탕치지 않는 길이다. 올해 마지막 벨롱장은 다음달 7일에 열린다. 31일 장까지 치면 올해 벨롱장에 갈 기회는 단 두 번 남은 셈이다.


제주도 최초의 플리마켓은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서 열리는 '서귀포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다. 2007년 작가 4~5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 커져 이제는 1년 내내 주말과 공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이효리가 콩을 팔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하루하나 카페의 '반짝반짝 착한가게'도 유명하다. 매주말이면 제주도는 플리마켓으로 들썩인다.


제주 플리마켓의 성장을 이끈 것은 제주도로 이주한 30~40대 문화예술인들.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또는 소일거리로 만든 작품을 플리마켓을 통해 내다팔았고 이 문화가 제주도민에게도 퍼져 나갔다.

전국, 원하는 대로 골라가자

플리마켓이라고 해서 모든 마켓이 같은 색을 띠고 있진 않다. 콘셉트만 플리마켓일 뿐, 지역별로 느낌이 다르고 마켓별로 파는 물품류도 다르다. 날씨에 따라 플리마켓의 진행 여부가 변동될 수 있으니 가기 전 정보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홍대 앞 예술시장 플리마켓'은 예술품을 주로 다루는 예술시장이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물품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3~11월 매주 토요일 오후 1~6시.


▲세종문화회관 뒤뜰 예술의 정원에서 열리는 '세종예술시장 소소'에서는 독립 출판물, 디자인 소품, 일러스트 등의 예술품을 선보인다. 독립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구비돼 있어 작가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1월 7일 낮 12~오후 6시.


▲농부, 요리사, 수공예사가 모여 여는 도시형 농부 농장인 '마르쉐@'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서부터 빵, 잼 등을 선보인다. 혜화, 명동, 양재 세 곳에서 열리며 각 주말 일정이 다르니 마르쉐 홈페이지에서 소식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 www.marcheat.net


▲'플로잉마켓'은 맛집과 상점들로 가득 찬 판교 백현동 카페거리에 들어선 또 다른 상점들이다. 주 물품은 수공예품으로 매 회 수익의 20%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 1~7시.


▲대전시 중구 은행동에 있는 '대전 아트플리마켓'에선 다양한 예술품, 중고품을 살 수 있으며 공연과 전시 등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도 있다. 3~11월 첫째·셋째 토요일 오후 1~6시.


▲부산 '지구인시장'은 시민의 착한 소비를 실천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기획됐으며 송상현광장에서 열린다. 중고품서부터 의류, 신발 등 다양한 물건이 판매된다. 10월 31일(토), 11월 7·8·14·15(토·일) 오후 1시~5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