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유경희의 아트살롱]현대에 가장 주목받는 스타급 신(神)

바람아님 2015. 11. 14. 00:29
경향신문 2014-6-20

호메로스는 헤르메스를 "신들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호의적인 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담당 분야가 많은 신은 전무후무하다. 통상 전령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이자 협상의 신이며, 도둑놈의 신이자 사기꾼의 신이다. 뿐만 아니라 달변·웅변·변론의 신이기도 하며, 정보·IT·사이버의 신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여행자와 나그네의 수호신인 그는 노마디즘의 화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는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이며, 요즘 가장 핫한 신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오반니 다 볼로냐, 헤르메스의 나는 법, 1580


헤르메스는 그 어떤 신보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 인물 그 자체보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액세서리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두 마리 뱀이 휘감긴 지팡이 카두세우스는 신과 인간을 화해시킨다는 의미를 지녔다. 사실 카두세우스는 헤르메스가 서로 싸우는 두 마리 뱀을 떼어놓기 위해 그 사이에 막대기를 집어넣었는데 뱀들이 막대를 칭칭 감아 탄생한 것이다. 역시 중재의 달인이라는 말이다. 날개 달린 여행용 모자 페타소스 또한 헤르메스의 필수품이다. 바로 네이버의 로고가 되어 유명해진 모자가 아닌가! 날개 달린 샌들 탈라리아는 그가 얼마나 바람처럼 날쌔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남들은 하나도 갖지 못한 날개를 여섯 개씩이나 가졌으니 그 속도는 말해 무엇하랴!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반니 다 볼로냐가 제작한 청동상은 헤르메스의 특징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우리의 시선은 치켜세운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 이내 한쪽 다리를 타고 오른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체중을 실은 왼쪽 까치발 끝으로 모아진다. 날렵하게 균형 잡힌 몸체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청동 특유의 질감과 빛깔이 어우러져 더없이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재치있고 약삭빠른 헤르메스의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가 입속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헤르메스를 날게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 유경희 |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