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유경희의 아트살롱]밀레보다 더 유명한

바람아님 2015. 11. 27. 01:08

경향신문 : 2014-09-05

 

이삭줍고 돌아오는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1859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밀레가 활동했던 시절, 그의 ‘이삭줍기’보다 훨씬 더 인기 있었던 그림이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인 쥘 브르통(Julles Breton)의 그림인데, 당시 살롱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황량한 들판의 저녁 무렵, 남루한 복장의 한 무리 여성들이 짚단을 이거나 든 채 걷고 있고, 몇몇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삭을 줍고 있다. 여인들은 추수가 다 끝난 대지주의 밭에서 바닥에 흩어진 지푸라기를 주우러 온 가난한 농민들이다. 사실 이 풍경 속에는 짠한 스토리가 숨겨 있다. 당대 프랑스 소작민들은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허락됐지만, 동시에 이삭줍기는 가장 천한 일로 여겨졌던 것. 이 작품을 두고 당대 보수적 비평가들은 사실주의의 정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혹 그들이 칭송한 것은, 비참한 상황에도 무척 당당하게 생존하는 모습이었을까?

브르통의 그림은 밀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처참한 빈곤과 고단한 노동의 흔적이 덜 보인다. 따스하고 엄격한 시선이 녹아 있으며 시적인 품격마저 보이는 밀레의 작품에 비하면,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무표정하지만, 기이하게도 포즈와 태도가 축제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당대 농민의 실상이 아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당의정 같은 프로파간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같이 말이다.

브르통은 프랑스 북부 지역에 위치한 쿠리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했다. 파리에서 풍경화를 그렸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고향에 돌아와 헐벗은 사람들, 시골풍경 등 농민의 삶을 주제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농민화가로 알려진 그는 ‘진실주의(verism)’의 옹호자이자 뚜렷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자였다. 반 고흐 역시 브르통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이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려 수확의 기쁨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무엇보다 농부들의 마음이 흡족해야 나라가 산다. 그들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인 계절이기를 바라본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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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 밀레- ­이삭줍기

세계일보 2008-9-12

 

 추수가 끝난 자리 낟알 줍는 가난한 여인들
고된 삶 사는 이웃을 위한 작은 배려 느껴져

 
장 프랑수아 밀레. 대지와 함께 호흡하는 농민의 모습과 자연을 그린 소박한 화가이자 국내 미술교과서에도 수십년간 늘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거장 중의 거장이다.

그 스스로도 빈곤과 싸우면서 프랑스 시골농민의 일상을 취재하며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오늘날 유럽 회화사상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걸작 중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이삭줍기'에는 이미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세 농촌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여인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곡식 낟알을 줍고, 한 여인은 자신들이 모은 이삭을 간수하고 있다. 멀리 엷은 구름이 낀 하늘 아래에는 수확물들이 그득히 쌓여있고. 일꾼들이 분주하게 곡식 단을 나르고 있다. 말을 탄 관리인은 건물 앞에서 일꾼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일꾼과 관리인의 모습은 작품 전면에 서있는 세 여인을 둘러싼 분위기와는 어딘지 다른 것처럼 보인다. 무슨 차이인지 아시겠는가? 그렇다. 여인들은 소유한 땅도, 수확할 곡식도, 곡식을 거두어주고 삯을 받을 고용주도 없는, 그야말로 가난한 천민들이다.

작품에서처럼 당시 유럽은 추수꾼들이 추수하고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곡식 낟알을 주워 가져가는 것이 암암리에 허용되던 사회였다.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기에도 벅찰 정도의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을 위한 작은 배려였던 것일까. 작품을 다시 보니 여인들의 투박한 손과 굽은 허리,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한 머릿수건이 더 이상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고 삶을 지탱하려는 고된 노동행위의 산물로 보인다.

노동은 늘 고될 수밖에 없지만, 그 뒤에 돌아오는 휴식과 자연이 주는 선물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그래서 늘 자연을 대하는 농민들은 거룩하고 숭고한 노동의 의식에 기꺼이 동참하면서도 때론 부유한 도시민보다 더 큰 마음의 여유를 갖는가 보다.

그에 비해 많은 도시민은 어떤가. 한 방에 '인생역전' 하는 것이 더 부러움을 얻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복권당첨자들의 90%가 결국 파산해 무일푼 신세로 전락했다는 조사결과도 있고, 그런 사례가 잊을 만하면 뉴스에 보도되곤 하지만, 여전히 복권발행사업체는 불황을 모른다.

최근 영국의 한 여성이 친척으로부터 상속받은 약 180억원을 자선단체와 복지시설에 기부한 미담이 소개됐다. 여생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었지만, 그녀는 곧 있을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자 하나를 사고 호텔에 묵을 비용을 제외한 전액을 기꺼이 희사했다고 한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게 됐다. 화려한 옷을 입기엔 몸매가 받쳐주지 못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으며 휴가를 보낼 틈도 없다. 그래도 지금 정말 행복하다"는 그녀의 발언은 '한 방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땀방울 어린 노동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요즘이기에, 작지만 훈훈한 실천으로 마음의 수확을 거두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도 민족의 명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친인척들과 만나는 것도, 풍요로운 식탁 앞에서도 가난한 마음을 갖게 될 법한 요즘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함께 '마음의 부자가 되는 법'을 이야기해 봄은 어떨까.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