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26 신수진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파리를 벗어나서 서울로 돌아온 후 닷새 만에 다시 런던을 경유해서
브뤼셀로 들어가야 하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거의 비어 있는 좌석들을 바라보며 비행기 안에서부터 심란하더니 런던에 내리자마자 브뤼셀 여행을
자제하라는 최상위 등급 경보가 발령돼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브뤼셀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밀쳐두고 경유지에 대기 상태로 발이 묶여 있자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런던 시내를 배회하다 내셔널갤러리로 향했다.
예정도 없이 들어선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장면을 보게 됐다. 슬그머니 뒷줄에 다가가 앉았다.
예정도 없이 들어선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장면을 보게 됐다. 슬그머니 뒷줄에 다가가 앉았다.
학생 시절 배웠던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었다. 혹 아는 얘기를 들을지 모르겠다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도서관에 가면 한 번에 몇 권의 책을 골라 볼 수 있을까" 물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도서관에 가면 한 번에 몇 권의 책을 골라 볼 수 있을까" 물었다.
아이들은 두세 권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미술관에서도 몇몇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좋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책과 달리 그림에는 모든 이야기가 한 화면에 들어 있으니 천천히 구석구석 살피면서
이야기의 단서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무엇이 제일 잘 보이는지,
자신이 그림 속에 들어간다면 어느 위치로 가고 싶은지 물었다.
그림 전체를 살펴보게 한 다음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게 하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상상을 덧붙여 설명하게 했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한 작품 앞에서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일사일언] 그림, 상상하면 다시 보입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1/25/2015112504195_1.jpg)
내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자유로운 상상과 대화였다.
아이들의 천진하고 틀을 벗어난 해석 덕분에 내 눈에도 작품이 새롭게 보였다. 마음도 어느새 더없이 평안해졌다.
전문가가 전해주는 정답이 아니라 누구나 펼칠 수 있는 상상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때
예술은 모두에게 기쁨과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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