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05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산업디자인)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물을 길어 나르는 게 가장 힘든 일과 중 하나였다.
사람이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물의 양은 기껏해야 20L 정도이므로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수시로 물을 길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거의 잊혀가는 일이지만, 전 세계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먼 곳에서 식수를 떠 와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산다.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된 도구가 뚱뚱한 하마를 연상케 하는 '히포 롤러(Hippo Roller)'다.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페티 펫저(Pettie Petzer)와 조한 존커(Johan Jonker)는 보통 6㎞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물통과 바퀴가 하나인 물 긷는 도구를 디자인했다.
90ℓ나 되는 물을 가득 담은 플라스틱 물통의 체감 무게가 8.5㎏ 정도에 지나지 않아 어린아이도 쉽게 나를 수 있다.
강철 파이프로 만든 손잡이가 물통의 양쪽 중심축에 연결된 구조이므로 제작이 쉽고 사용하기도 편하다.
개폐구의 직경이 13.5㎝나 돼 쉽게 물을 채우고 따를 수 있으며, 물통 안쪽에 생기는 이끼 등을 제거하기도 쉽다.
내구성이 높은 저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져서 한번 장만하면 5년 이상 쓸 수 있다.
지역의 여건에 맞는 적정기술들을 제대로 활용하여 개선한 덕분이다.
그런데 한 개당 가격이 운송료 포함해 125달러에 달하므로 가난한 현지인들이 감 당하기 쉽지 않다.
이에 유니세프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NGO들이 전 세계에서 모은 기부금으로 구입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15년 9월까지 4만6000여개의 히포 롤러가 남아공 등 20여개 나라의 주민들에게 공급돼
약 30만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시자 추가 이미지>
'文學,藝術 > 디자인·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95] 기쁨의 눈물 넘치는 새해를 (0) | 2016.01.01 |
---|---|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94] 장인의 손길 닿은 영롱한 유리 트리 (0) | 2015.12.19 |
[Saturday] “세 살 부터 여든까지 쓰는 평생의자 … 그게 바로 디자인 혁신” (0) | 2015.11.22 |
[단독] 집 속에 집을 짓다, 미국 땅에 둥지 튼 성균관 명륜당 (0) | 2015.11.20 |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92] 유럽도 사로잡은 한국 캐릭터의 힘 (0) | 201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