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제1코스 출발점인 도봉산역 부근 서울창포원을 출발해 일주를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주말을 이용해 걸었다. 코스 중간에 거쳐 갔음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는데 스탬프북에 찍히는 스탬프 개수가 늘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난 주말엔 가장 긴 제8코스 북한산 구간(34.5㎞) 일부인 정릉 솔샘길부터 우이동 소나무숲길까지 걸었다.
봄, 여름, 가을을 거쳐 10개월째 접어드니 완주를 눈앞에 뒀다. 완주하려면 스탬프를 28개 찍어야 하는데 이제 2개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행복했다.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 아차산, 일자산, 대모산, 우면산, 관악산, 봉산, 앵봉산, 북한산 등 서울의 여러 산을 만났다. 한강 교량을 건너고 탄천, 안양천, 불광천 등 지천을 따라 걸었다. 산과 하천이 품고 있는 자연생태와 역사, 넉넉함, 싱그러움을 느끼고 호흡했다. 서울둘레길은 서울 25개 자치구 중 도심에 있는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을 제외한 19개 구를 지난다. 그 길을 걸으면서 서울 산천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서울둘레길을 모두 돌아 완주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6000명이 넘는다. 개통 1년1개월만이니 서울둘레길을 즐기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걷는 것만큼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효율이 높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여유 있게 걸으며 주위를 감상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갈무리하고, 동행자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전국 곳곳에 특색 있는 도보 코스가 잇따라 생겨나 인기를 끄는 이유다.
서울에는 둘레길 외에도 아름다운 길이 많다. 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등을 거치며 한양도성(18.6㎞)을 따라 도는 한양도성길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안산, 배봉산, 관악산 등 도심과 근교 산에는 아기자기한 자락길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고덕천길, 도림천길, 탄천길, 홍제천길 등 한강 지천을 따라가는 산책로도 많다. 몽촌토성 역사길, 강서 생태길 등 생태문화길도 곳곳에 있다.
차량에 우선권을 내줬던 도심의 도로도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어 왔다. 1999년 광화문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등 지하도가 있는 교차로에도 속속 횡단보도가 들어섰다.
올해로 복원 10년을 맞은 청계천은 차가 주인인 길을 사람이 모이고 쉬어가는 공간으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수명이 다 돼 철거될 운명이었던 서울역고가를 리모델링해 공원화하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도 보행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사업이다. 서울역고가공원이 2017년 완공되면 일대는 보행자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울역고가와 연결된 17개의 ‘사람길’을 통해 중림동, 만리동, 청파동, 서울역광장, 남산, 남대문시장 등으로 관광객과 시민이 오가게 된다. 차를 타고 바쁘게 지나치기만 했던 공간이 사람들이 거닐고, 쉬고, 놀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주위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올 것이다.
걷고 싶고, 걷기 편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사업과 정책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빠른 속도에 지쳐버린 도시인들이 여유를 느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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