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 논설위원
“호오이~, 호오잇”. 맑은 날 제주 해변 올레길을 걸을 때 간혹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얼핏 새소리나 휘파람 소리 같지만 인근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海女)의 숨소리다.
해녀는 호흡으로 승부한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야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다. 실한 전복·소라를 더 많은 곳에서 작업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 해녀의 기량 차도 여기서 나온다. 상군 해녀는 10m가 넘는 곳까지 내려가 길게는 2분 넘게 숨 쉬려는 본능을 견딘다. 자칫 돌아설 때를 놓치고 ‘물숨’을 쉬게 되면 목숨도 위험해진다. 매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오가는 직업이 해녀다.
경지에 오른 해녀는 물속에서도 숨을 쉰다. 71세 가파도 해녀의 말이다. “물에 들어갈 때 쉬는 숨이 있고, 물건을 잡을 때 쉬는 숨이 있고, 나올 때 쉬는 숨이 있어요. 한 번 물에 들어가면 15∼16번 정도는 숨을 쉽니다. 입으로 내쉬면 물을 먹게 되니까 가슴으로만 쉬지요.”(서명숙,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그렇게 물 위로 떠올라 참고 참은 숨을 길게 내뱉는 것이 숨비소리다. 숨비는 잠수를 뜻한다. 문태준 시인은 “기운을 다 소진한 후에 다시 생명의 호흡이 들어가는 소리가 바로 숨비소리”라고 했다.
해녀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일본 해녀 ‘아마’는 바다가 잔잔한 5∼9월에 일하지만 제주 해녀는 추운 겨울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때를 가려 한 달에 절반쯤 물에 들어가고 그 외 시간에도 집안일, 밭일, 장사 일로 쉴 틈이 없다. 제주에서 원래 바닷속에 들어가는 역할은 남자 ‘포작(浦作)’이 맡았으나 진상용 전복 수탈에 시달리다 대부분 도주하는 바람에 여자 몫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제주 해녀를 소개한 기사에서 ‘한국 최초의 워킹맘’이라고도 했다.
제주 해녀가 지난주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선정됐다. 전통적 채집 방식과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높이 평가한 결과다. 상군 해녀는 중군·하군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나이 든 해녀에겐 따로 수심 얕은 곳을 배정해주는 것이 불문율이다. 1960년대만 해도 전체 제주 여성의 21%, 2만6000명이 물질에 나섰으나 지난해 4415명으로 줄었다. 이 중 70대 이상이 60%다. 10∼20년 후면 현역이 사라질 수 있다. 제주 해녀를 과거의 기억 아닌 ‘살아있는 유산’으로 이어갈 지혜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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