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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의 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14-① 야쿠티야(시베리아) 상권 장악하는 중국인 알고보니 한국계?

바람아님 2016. 1. 10. 09:25

(출처-조선일보 2015.07.16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사하공화국의 주요 원주민은 야쿠트, 에벤키, 에벤이다. 이 중에서도 야쿠트인이 다수다. 
‘사하’라는 말도 야쿠트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렇다고 이 땅을 야쿠트인만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단일 민족으로선 야쿠트인과 러시아인이 엇비슷하다. 주요 기관의 장은 대부분 야쿠트인이다.

사하공화국에서 매우 젊고 영리한 러시아인을 사귀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고위직이었다. 
판단이 빠르고 논리가 명쾌하였다. 속 얘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이까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직을 하고 호주로 떠났다. 더 이상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전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방이라는 큰 차원에서는 모스크바 영향력이 크지만, 지방이라는 작은 차원에서는 민족이라는 변수가 중요하다.

러시아에는 15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다. 사하공화국에는 120개 이상의 민족이 있다. 
야쿠트, 에벤키, 에벤, 그리고 존재감을 잃어가는 유카기르, 축치를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이 땅에 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최초 외국인은 모피를 얻기 위해 들어온 카자크 부대였다. 
그들은 총 한 방으로 야쿠트인을 제압하였다. 그리곤 무슨 권리가 있듯 밍크를 비롯한 모피를 세금처럼 요구하였다. 
이것이 러시아인과 야쿠트인이 조우하는 첫 단계였다.
“중국시장”이라 불리는 야쿠츠크의 제일 큰 시장 ‘스톨리치니’.
“중국시장”이라 불리는 야쿠츠크의 제일 큰 시장 ‘스톨리치니’.
하지만 야쿠트 사회를 개화시키는데 러시아인의 역할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제정(帝政) 러시아 시절 정치범들의 최종 유형지가 바로 야쿠티야였다. 
이곳에서 정치범들은 러시아어를 비롯한 교양을 가르쳤다. 
러시아 어디를 가나 모스크바와 같은 표준 발음을 들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야쿠츠크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빌류이스크라는 도시에는 “체르니셉스키 사범학교”가 있다. 철학자이며 문학자인 
체르니셉스키가 이곳에서 유형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친 걸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학교에 붙인 것이다.

1920~1930년대에는 금광 발견으로, 1950~1960년대에는 다이아몬드 발견으로 많은 러시아인이 유입되었다. 
1989년에는 총 인구의 50.3%로 정점을 찍었다. 현재는 러시아인이 40% 정도를 차지한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광산이나 건설 기술자로서 또는 교사나 의사로, 학자로 활동하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야쿠트인들의 이교도적 신앙과 관습을 수용하면서 야쿠트인의 러시아화를 지원하였다. 
음식을 먼저 불에 갖다 놓는다든지, 멀리 길을 떠날 때 마유주 크무스를 마신다든지 하는 것을 러시아 정교회가 수용하였다.

러시아인 외에 외국인으로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독일인,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유대인, 그루지야인, 
아르메니아인, 아제르바이잔, 핀란드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 한국인, 부랴트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의 유입 역사가 비교적 길다. 이들은 17세기부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은 정치적 사건들과 연루되어 유형 당한 정치범들이었다. 
1930~1950년대 1만2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부농 출신들이 이곳에 보내졌다. 
이들은 대부분 서부 우크라이나의 반체제인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