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7.16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그럴 때마다 폴란드에서 정치범들이 이곳으로 보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야쿠티야의 근대화에 기여한
공적은 엄청나다. 야쿠트인의 풍습, 언어 등이 바로 이들에 의해 연구되고 정리되었다. 이들이 편찬한 야쿠트어
사전이나 민족학 연구서들은 지금도 고전이다.
특이한 것 중 하나가 유대인 사회이다. 1727년 유대인 안톤 마누일로비치 데비에르 백작이 처음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특이한 것 중 하나가 유대인 사회이다. 1727년 유대인 안톤 마누일로비치 데비에르 백작이 처음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그 뒤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유대인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은 소규모 무역, 가내공업, 농업에 종사하거나 의사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여 유대교회당, 학교, 유대인 묘지 등을 건설하고, 야쿠츠크 시의 박물관, 도서관,
양로원 건설 등에도 많은 기부금을 내었다. 이들은 공산당원으로서도 활발하였다. 2월 혁명 후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에
내려졌던 유대인에 대한 모든 제한을 철폐하게 하였다. 지금은 대부분 이스라엘에 이민을 가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최근 20년간 유입된 외국인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같은 카프카스지역 출신들이이다.
최근 20년간 유입된 외국인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같은 카프카스지역 출신들이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인이다. 카프카스인들은 야채, 과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적인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식당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
- 한드가 시의 이슬람 사원.
중국인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야쿠츠크 시에서 가장 큰 생필품 시장을 이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 시장은 ‘수도 시장’이라는 뜻으로 공식 명칭이 ‘스톨리치니’이지만 사람들은 ‘중국시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장사하는 중국인의 75%가 한국계 중국인, 즉 ‘조선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코리아 사우나’, ‘서울 식당’, ‘코리아 하우스’ 같은 곳의 주인이 모두 중국계 한국인이다.
이들이 한국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은 이곳에서 한국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은 이곳에서 한국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1이라 한다면, 이곳에서의 신뢰도는 2라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나 일반인들은 한국 사람이 와서 어떤 비즈니스든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20~30년 전 묵은 기억을 들추어내며 손사래부터 친다.
러시아가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 야쿠티야가 얼마나 친한적(親韓的)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제 중국인의 유입은 최근 5년 사이 새로운 유형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중국인의 유입은 최근 5년 사이 새로운 유형으로 바뀌고 있다.
주로 헤이룽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과 홍콩 자본의 투자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다.
2022년까지 레나강에 교량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 8600억 원에 달하는 공사이다.
철도, 도로, 관광, 유전 개발, 아파트 건설을 비롯한 도시 개발 분야에 중국은 전략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느 학교 교장 선생님이 우려 섞인 한 마디를 던진다. “여기가 중국 땅이 될 것 같아요!”
야쿠티야(시베리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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