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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연의 연주! 영실

바람아님 2016. 1. 15. 00:56
[J플러스] 입력 2016.01.13 14:39

신령스런운 존재들이 머물고 있다는 영실(靈室)은 이름 만큼이나 신령스러운 형태를 보여준다. 한라산 기슭에서 고산평원 선작지왓으로 이어지는 능선 따라 커다란 타원을 그리며 깊게 패인 영실계곡은 거대한 분화구를 연상하고도 남는다.

영실 기슭은 몸은 붉으나 잎은 초록인 적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주변 계곡 둘레엔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 서 있다.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맛있게 먹고는 가마솥에 바닥에 어머니인 설문대할망 뼈가 나오자 그자리에 울다가 몸이 굳어 기암이 되었다는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 이라 불리는 영실기암이 그 주인공이다.

오백나한 옆, 영실 북쪽에는 병풍을 펼쳐 계곡을 얼싸 안은 듯한 형태로 서 있는 기암이 자리하고 있다. 이 병풍바위가 겨울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막아 줄 뿐만 아니라 한라산 윗세오름으로 가는 탐방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깊은 계곡을 아우르며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위엄과 높이에 놀라 한걸음에 달려온 바람도 넘기 힘들어 하는 곳이다.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한라산 정상코스가 부담스럽거나 짦은시간에 한라산의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영실에서 시작하여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초입을 지나 계곡능선으로 올라서면 넓게 펼쳐진 수림과 제주 남쪽 해안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섬에서만 느낄수 있는 색다른 경치와 해발 1700고지 윗세오름 부근에 고산에 펼쳐진 평원이 주는 평화로움은 한라산정상과는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예년 이맘때면 계곡의 모든것이 겨울에 꽁꽁 얼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올 겨울의 기후를 말해주듯 계곡에 흐르는 물은 겨울을 벗어나 봄으나 흘러가듯 졸졸졸 흐른다.  새로운 생명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라 착각한체 생명의 따스함이 계곡를 채운다. 엄마  쫓아 들판에 나온 병아리가 줄지어 걸어가는 가는 듯 쫑쫑 흐른다. 바위를 덮고 있는 하얀 눈을 녹이며 계곡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아장아장 내려간다.

윗세오름 오르는 동안 계곡은 짙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 하기 어려운 회색빛을 가득 머금어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다.  병풍바위도 오백형제나 되는 수많은 기암 중 한 형제 기암도 볼수 없었다. 푸른던 잎새 가을의 이별에 붉은 얼굴하고  떠난 자리엔 하얀 눈을 덮어 그리움을 감싸안고 허공에 그려진 그리움의 손 끝에 투명한 얼음이 영글어 있다.

안개와 낮게 내려앉은 구름과 설원은 수묵화를 그려 놓고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고 걷는 사람은 수묵화 위에 수채화를 덧칠한다. 허리만큼 자란 고산나무 위에 눈이 내려 앉아 바다속 산호군락를 연출하여 내가 수중 속으로 들어온 착각에 빠져 들게 한다. 병풍바위를 지나면서 나무들은 더 뽀송뽀송한 눈옷을 입고 하얀세상 겨울왕국을 만들어 낸다.

윗세오름도 형태도 보이지 않은 만큼 세상이 쟂빛에 갇혀 있어 그저 "눈구경 하나 잘 했다" 독백하며 서운함 발길 힘없이 걷는 하산 막바지에 갑자기 "환상이다","와. 아름답다" 주변사람들이 야단이다. 계곡을 타고 오르던 바람이 안개와 구름을 밀어냈다 하며 서로 힘 겨루길 몇번 반복하더니 파란 하늘 아래 영실 계곡 자태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무가지에 얼어붙은 눈이 파란하늘을 깨뜨릴 듯 뻗어가는 손짓에 하늘도 놀란 듯 움찔 거린다. 검은 절벽 타고 내리던 물이 얼어 붙은 것인지 하얀눈이 내리다 얼어 붙은 것인지 영실기암 사이로 얼음폭포의 하얀 꼬리가 길게 내리고 있다 . 그 기암 옆 숲엔 보드라운 하얀색 솜털 양산 하나씩 들고 줄 지어선 나무 눈꽃이 춤을 춘다.

치매환자 처럼 계절을 망각한체 봄 같은 겨울을 연출하던 자연에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무대의 마지막 장이 오름과 동시에 화려한 음악의 연주되고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면서 모든 출연자가 나와 클라이막스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등산하는 동안 조금은 답답한 연주 였구나 하고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하늘높이 치켜든 지휘봉 따라 모두 악기들의 제각기 소리로 아름다움을 그려 놓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눈과 맘을 잡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