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1.20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동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자 광야가 나타났다. 첫 인상은 ‘삭막함’이었다. 산성화한 언덕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명’은 느껴지지 않았다. 푸석푸석한 메마름과 절대적인 황량함만 건조한 능선을 달렸다. “아하, 여기가 광야구나” “예수가 걸었던 광야가 이런 풍경이구나.”
그때 가이드가 흥미로운 설명을 던졌다. “요즘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선 ‘광야 트래킹’이 유행이다. 거친 자연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자신의 한계를 체험한다.” 200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나’를 무너뜨리는 곳, 거기서 드러나는 ‘거대한 우주’를 깨닫는 곳. 그게 ‘광야’라는 공간이었을 터이다.
이스라엘의 사막은 달랐다. 바람이 만든 모래결과 굴곡진 지평선이 한 폭의 그림을 빚어내는 아라비아 사막과는 아주 달랐다. 그저 거칠고 단조로운 땅이었다. 성서에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광야’와 똑 닮았다고 기록돼 있다. ‘그의 메시지는 광야만큼 간결하고 꾸밈이 없었다.’(마태복음 3장2절) 광야에는 그런 단출함도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이었다. 인도의 붓다도 ‘광야’로 향했다. 그 광야는 사막이 아니었다. 보드가야의 네란자라 강변. ‘고행림(苦行林)’이라 불리는 거대한 숲이었다. 당시 2만 명의 수행자가 그 숲에 살았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과 고행을 하는 이들이었다. 상상해보면 굉장한 광경이다. 2만 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이 온 숲을 빼곡히 채웠을 터이다. 누구는 나무 아래서, 누구는 바위 위에서, 누구는 가부좌를 틀고, 또 누구는 가시방석 위에 누워서 말이다. 온갖 수행법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려 애를 썼을 터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거대한 ‘명상 타운’이다.
한국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계룡산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요즘도 계룡산에는 온갖 ‘도사’와 ‘수행자’들이 들락거린다. 북한의 금강산도 한때는 ‘계룡산’이었다. 절벽마다, 골짜기마다, 일만이천 봉우리마다 암자(수행처)가 빼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율곡 이이도 한때는 입산해 금강산에서 도인(道人)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에도 그런‘계룡산’이 있다. 그게 바로 광야다. 예수 당시에는 유대 광야에 여러 수도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친 광야의 절벽과 동굴에서 살았다. 그 중 하나가 쿰란공동체다.이 공동체에는 성서를 꿰뚫는 안목을 가진 ‘선생’도 있었다. 그들은 구약성서를 필사하고, 재산을 공유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수도하며, 오후 5시가 되면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다고 한다. 일종의 ‘세례’였다.
버스가 그곳에 도착했다. 제주도 돌담길처럼 생긴 유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사이를 거닐었다. 공동체의 식당이 있었다는 장소 앞에 섰다. 궁금했다. 2000년 전의 구도자들. 그들은 식탁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어떤 간절함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걸고 이곳을 찾게 했을까. 건너편에는 높다란 모래 절벽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동굴들이 보였다. 2000년 전에는 저 동굴마다 수도자들로 빼곡했을까.
광야를 걸었다. 메마른 땅이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고 기록돼 있다. ‘광야’는 그리스어로 ‘에레모스(eremos)’다. ‘에레모스’는 ‘빈 곳’이란 뜻도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가 다석 유영모가 말한 ‘없이 계신 하느님’도 ‘빈 곳’이다. 빈 채로 비어있는 게 아니라 빈 채로 가득하다.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도 그렇다고 말한다. ‘0’으로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0’으로 가득 찬 거라고. 그러니 광야는 물리적 공간만 뜻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에고를 비울 때 드러나는 우주 이전의 우주다. 그런 ‘태초의 공간’이다.
유대 광야는 거칠고 단조로운 땅이다. 성서에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광야처럼 간결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의 사막은 달랐다. 바람이 만든 모래결과 굴곡진 지평선이 한 폭의 그림을 빚어내는 아라비아 사막과는 아주 달랐다. 그저 거칠고 단조로운 땅이었다. 성서에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광야’와 똑 닮았다고 기록돼 있다. ‘그의 메시지는 광야만큼 간결하고 꾸밈이 없었다.’(마태복음 3장2절) 광야에는 그런 단출함도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이었다. 인도의 붓다도 ‘광야’로 향했다. 그 광야는 사막이 아니었다. 보드가야의 네란자라 강변. ‘고행림(苦行林)’이라 불리는 거대한 숲이었다. 당시 2만 명의 수행자가 그 숲에 살았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과 고행을 하는 이들이었다. 상상해보면 굉장한 광경이다. 2만 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이 온 숲을 빼곡히 채웠을 터이다. 누구는 나무 아래서, 누구는 바위 위에서, 누구는 가부좌를 틀고, 또 누구는 가시방석 위에 누워서 말이다. 온갖 수행법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려 애를 썼을 터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거대한 ‘명상 타운’이다.
한국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계룡산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요즘도 계룡산에는 온갖 ‘도사’와 ‘수행자’들이 들락거린다. 북한의 금강산도 한때는 ‘계룡산’이었다. 절벽마다, 골짜기마다, 일만이천 봉우리마다 암자(수행처)가 빼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율곡 이이도 한때는 입산해 금강산에서 도인(道人)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광야를 걸었다. 메마른 땅이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고 기록돼 있다. ‘광야’는 그리스어로 ‘에레모스(eremos)’다. ‘에레모스’는 ‘빈 곳’이란 뜻도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가 다석 유영모가 말한 ‘없이 계신 하느님’도 ‘빈 곳’이다. 빈 채로 비어있는 게 아니라 빈 채로 가득하다.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도 그렇다고 말한다. ‘0’으로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0’으로 가득 찬 거라고. 그러니 광야는 물리적 공간만 뜻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에고를 비울 때 드러나는 우주 이전의 우주다. 그런 ‘태초의 공간’이다.
예수는 악마를 세 차례나 무너뜨렸다. 악마는 ‘내 안의 욕망’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빈 곳’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걸 무너뜨려야 ‘빈 곳’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러나면 알게 된다. 모든 색(色) 속에 이미 ‘빈 곳’이 있음을 말이다. 모든 형상 속에 이미 하느님이 계심을 말이다. 불교에선 그걸 “형상 속에 ‘빈 곳’이 있고, ‘빈 곳’ 속에 형상이 있다”고 말한다. 그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여리고의 시험산에서 예수는 40일간 금식하며 악마와 싸웠다. 시험산 중턱의 가파른 절벽에는 1500년 전에 세운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수도원 안에는 예수가 당시 머물렀다는 동굴도 있었다. 뿐만 아니다. 악마의 유혹을 받을 때 예수가 걸터앉았다는 조그만 바위도 있었다. 예수 사후에도 수도사들은 광야로 갔다. 예수가 만났던 ‘악마’를 그들은 다시 만났다. 그게 예수가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했던 ‘각자의 십자가’였다.
예수도 나사렛을 떠나 세례 요한을 찾아왔다. 실제 세례도 받았다. 예수가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마태복음 3장16절)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 비둘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쓴다. 나는 ‘하늘이 열리고’라는 구절에 눈길이 갔다. 그 대목을 안고 눈을 감았다. 그렇다. 하늘이 열려야, 성령이 내려온다. 하늘이 열리지 않는다면, 성령이 내려올 수가 없다. 그럼 어떡할 때 하늘이 열리는 걸까. 왜 우리의 하늘은 열리지 않는 걸까.
미국의 유진 피터슨 목사는 저서 『메시지』에서 요한의 말을 이렇게 풀었다. “너희의 뱀가죽에 물을 좀 묻힌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 같으냐? 바꿔야 할 것은 너희 겉가죽이 아니라 너희 삶이다!”(마태복음 3장7~10절). 요한의 발언은 ‘예수 당시’뿐 아니라 ‘요즘 시대’까지 겨냥한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뱀의 자식들’이다. ‘천국행 티켓’을 얻고자 교회에 가고, 몸에 물만 묻히는 세례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뱀의 허물을 벗으려면 말이다.
선악과(善惡果)는 원래 한 덩어리의 열매였다. 거기에는 쪼갬이 없었다. 아담과 이브가 그걸 먹으면서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로 쪼개졌다. 그때부터 사람은 둘로 나누기 시작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선과 악, 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 세상 모두를 그렇게 둘로 쪼갰다.
그때 하느님이 아담을 찾았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은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성서에는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게 쪼갬의 결과물이다. 그걸 안고선 ‘신의 속성’과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담은 하느님 속으로, ‘신의 속성’ 속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당시 지중해 지역의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다.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회개하라’는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다. 도올 김용옥은 그걸 ‘회심(回心)’으로 번역했다. ‘마음의 방향을 튼다.’ 반면 예수가 실제 사용한 언어는 아람어였다. ‘메타노이아’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타브(tab)’다. ‘회복하다/돌아오다’란 뜻이다. 그럼 무엇을 회복하는 것일까. 예수는 대체 어디로 돌아오라고 한 걸까.
수년 전이었다. 네팔에서 나이 지긋한 힌두교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이마에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는 “제3의 눈”이라고 했다. “‘제3의 눈’이 뭡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그는 ‘마음의 눈’”이라고 답했다. 그랬다. 그들이 이마를 붉게 물들이며 그토록 간절히 구하는 건 ‘마음의 눈’이었다. 그게 누구의 마음일까. 지지고 볶는 ‘나의 마음’일까. 아니었다. 그건 ‘신의 마음’이었다. 그들이 구하는 ‘제3의 눈’은 다름 아닌 ‘신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예수의 눈’은 어떤 건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게 예수의 눈이다. 우리의 눈은 다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늘 불행해 보인다. 안타깝고 없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채우려 한다.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가지고 싶은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그렇게 마음이 ‘가짐’으로 가득한 부자가 될 때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게 우리의 눈이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가 외친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는 그렇게 역설한다. 결국 ‘회개하라’는 ‘눈을 돌리라’는 뜻이다. 관점을 돌리라는 말이다. ‘나의 눈’에서 ‘신의 눈’으로 바꾸라는 의미다. 왜일까.거기에 자유와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하느님 나라’이니까.
마침 헤롯의 생일 잔치가 열렸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첫 남편의 딸)는 춤을 추었다. 다들 감탄했다.
헤롯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라. 맹세하건데, 네가 말만 하면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마가복음 6장22~23절)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달려간 살로메가 돌아와 말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세요.”(마가복음 6장25절) 헤롯 왕은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형이 집행됐다. 쟁반에 담긴 세례 요한의 목이 살로메에게 전달됐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유디트Ⅱ(살로메)’라는 작품에서 ‘세례 요한의 죽음’을 다루었다.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살로메의 창백한 얼굴 밑으로 독기와 욕망이 고여 있다. 화려한 팔찌에 감긴 살로메의 손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틀어쥐고 있다.
요르단강은 지금도 흐른다. 예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2000년 세월을 관통하며 지금도 흐른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에게도 위협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마가복음 6장14절)고도 했다. 헤롯 왕도 이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 어떤 화가 예수에게 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4회에서 계속됩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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