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1.1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객지에서(客懷) 이 몸은 동서쪽 그 어디로 가야 하나? 가는 곳 정처 없어 쑥대마냥 흘러가네. 떠돌다가 친구 만나 한 집에서 잠을 자며 난리 겪는 타향에서 새해를 맞이하네. 눈 덮인 산 훨훨 날아 기러기는 돌아가는데 새벽녘 바람 타고 나팔소리 들려오네. 서글퍼라, 낯선 땅을 구름처럼 가는 신세 돌아나는 봄풀에는 그리움만 하염없네. | 客懷 此身那復計西東(차신나부계서동) 到處悠悠逐轉蓬(도처유유축전봉) 異鄕新歲亂離中(이향신세난리중) 殘角聲飛五夜風(잔각성비오야풍) 漸看芳草思無窮(점간방초사무궁) |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에서](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1/15/2016011503442_0.jpg)
조선 중기의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 임진왜란 와중에 지었다.
평소에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각지를 떠돌았는데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전란 중에 정처없이 방랑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 한 집 한 방에서 새해를 맞은 것이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위로일 뿐 다시 헤어져 각자의 행로를 떠난다.
눈에 덮인 첩첩한 산을 넘어 기러기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건마는
새벽길 떠나는 내 귓속에는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와 허둥대게 한다.
편안한 안식의 시간은 언제나 찾아오려나?
처량한 나그네의 눈에는 돋아나는 풀잎이 자꾸만 들어온다.
그래도 대지에는 새봄이 찾아오나 보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 읽어주는 남자] 불이 이글이글 김이 모락모락 (0) | 2016.01.21 |
---|---|
[정민의 世說新語] [350] 우각괴장 (牛角壞牆) (0) | 2016.01.20 |
[정민의 世說新語] [349] 행역방학(行役妨學) (0) | 2016.01.13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처가에서 (0) | 2016.01.09 |
[정민의 世說新語] [348] 석복겸공 (惜福謙恭) (0) | 2016.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