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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노동개혁, 노사정委 방식으론 더 기대할 것 없다

바람아님 2016. 1. 21. 00:48
문화일보 2016-1-20

한국노총이 19일 끝내 9·15 노사정 합의를 파기하고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한노총은 1998년 노사정위 출범 이후 이번까지 10차례 불참·탈퇴를 거듭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탈퇴 이후 아예 등을 돌렸다. 노사정위 18년은 양 노총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휘둘려온 역사이기도 하다. 이번 한노총의 파기·불참 사유도 설득력이 없다. 한노총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30일 공개한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 초안이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로 한 9·15 합의를 위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안 공개에 앞서 정부의 수차례 간담회 요청을 묵살한 쪽이 한노총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쉬운 해고’ 지침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초안은 일반해고(통상해고)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유형별로 정리한 일종의 가이드북으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한노총은 절차를 문제 삼아 판을 깼다. 해고의 ‘해’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이다.

박근혜정부는 9·15 합의를 근거로 노동개혁을 추진해왔지만, 한노총의 말 한마디에 원천 무효가 돼버렸다. 노조가 지지하는 노동개혁은 성립할 수 없다는 진리가 새삼 확인된 셈이다. 노사정위는 애초에 개혁을 관철할 수 있는 조직이 못 된다. 노동계 대표로 참여해온 한노총의 조합원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5%에도 못 미친다. 노동시장에서 90%가 넘는 청년·비정규직·실업자 등 개혁 실수요자가 빠진 논의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고, 결국 파탄에 이른 것이다. 기득권을 쥔 개혁 대상을 개혁 주체로 삼은 형국이다.


노사정위의 보다 근본적 결함은 노·사와 같은 반열에 놓인 정부 위상이다. 정부는 노동 현안이 있으면 노·사 입장과 전문가 견해를 반영해 정책을 추진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이름만 그럴듯한 ‘노사정 합의’ 뒤에 숨어 책임을 미루다 번번이 개혁다운 개혁에 실패했다. 한노총 파기 선언을 계기로 노사정위 역할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접어야 한다. 단순한 자문 및 의견 수렴 기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노동 대표성’을 실질에 맞게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도 어려우면 없애는 게 낫다. 그리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전체 근로자와 국가경제를 위한 노동·고용정책을 추진, 관철하는 것이 개혁의 원칙이자 실질적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