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취재파일] 두루미의 자식 사랑, 세상살이 준비 교육

바람아님 2016. 2. 14. 01:02
SBS 2016.02.13. 10:30

아가,
지난 해 봄 네가 태어나서 지금 첫 겨울을 넘기도록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 이제 곧 봄이 되면 아쉽지만 너를 떠나보내야만 한단다. 너른 세상으로 나가서 벗들과 어울리고, 짝을 찾아서 일가를 이뤄야겠지.

어떻게 먹을 것을 찾고, 어디 가서 쉬고, 위험한 건 뭔지 지금 잘 배워야 한단다. 아비 어미가 지금 가르쳐 주는 걸 잘 보고 배우거라. 겨울엔 들판에 먹을 게 없어서 이렇게 사람들이 주는 옥수수로 배를 채운단다. 이 물고기는 강에서 잡은 송어란다. 훌륭한 반찬이지! 하늘에서 수리 떼가 날아와서 채가니 뺏기지 않도록 해라.

낮에 오붓하게 쉬거나 밤에 맘 놓고 잠 자는 곳은 여기, 물 흐르는 강기슭 얕은 곳이나 여울이란다. 우리가 즐겨먹는 물고기나 물속 곤충도 많으니까, 잘 봐두거라. 밤에 잘 때는 여우나 너구리나 들고양이나, 이런 녀석들이 우리를 해치러 들어오지 못하거든. 네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생존지혜, 명심하거라.

우리 두루미 일가가 겨울에 사람 주는 모이에 기대는 게 사실 자연스러운 게 아니란다. 그래도 어쩌겠니, 겨울철 홋카이도에서 우리 두루미 가족이 사람과 공생하게 된 게 벌써 60년이 넘었으니, 이것도 살아가는 방식이 된 게지.

원래 홋카이도엔 사람이 거의 안 살았거든. 그런데 20세기 시작 무렵에 일본이 광대한 자연을 개척한답시고 대거 본도에서 사람을 들여보내서 우리가 살던 습지를 망가뜨렸단다. 우리에게 총질도 하고 덫도 놓고, 학살이 벌어졌지.

우리 일족이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질 뻔 했는데, 다행히도 마음 착한 몇몇 농부와 어린 학생들이 굶주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자기들 양식을 나눠주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단다. 1950년 즈음에서야 우리도 조금씩 사람을 겁내지 않게 됐고 말이지. 홋카이도에 지금 우리 일족은 1,550마리로 늘었단다. 

우리처럼 정수리에 빨간 베레모 쓰고 순백의 깃털 외투 걸친 일족을 '두루미(grus japonesis),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부르는데, 지구상에 통틀어 아시아 동북부에만 3천 마리 정도 밖에 안 남았지. 그 중 절반이 홋카이도에 1년 내내 머물러 살고, 나머지 절반 친척은 겨울에 어디로 날아와 사는지 아니? 바로 이웃 대한민국이란다. 강원도 철원 휴전선 비무장지대와 민통지역에 가장 많이 온다는군. 거기 사정은 어떨지...

여차하면 우리는 이 지구에서 영영 사라질 운명이야. 귀하신 몸이지! 덕분에 멀리서들 우리를 보러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우리 사진도 찍고 아주 기뻐들하지. '생태관광'이라고 해서 쏠쏠하게 도움도 된다고 하는데,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다는구나. 일본 홋카이도 쿠시로 사람들은 유별나게 우리를 잘도 이용해서 덕을 잘 보는 셈이지.

아가야, 우리 일족은 뭇새와 다르게 아름답고 우아하니 행동거지에 주의하기 바란다. 특히 몸집이 커서 날다가 무슨 물체든 부딪치기라도 하면 끝장임을 명심해라. 특별히...전봇대가 늘어선 곳에선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가느다란 전깃줄에 걸리면 다리 날개 부러져서 바로 세상과 작별하게 된단다. 인간이 겨우 우리에게 배려한다는 게 전깃줄에 노란 덮개를 씌우는 정도인데, 안개 낀 날이나 주위가 어두울 땐 그마저도 잘 안 보여서 위험하니, 부디 조심하거라.

박수택 취재파일 두루미
박수택 취재파일 두루미

바라기는 사람들이 더는 습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우리가 지금 사는 곳만이라도 남겨주면 좋겠구나. 습지는 쓸모없는 물구덩이라고 여겨서 멋대로 메워서 농경지 목초지로 만들고 건물도 짓고 했지만, 지금은 습지가 생명의 낙원이요, 보물창고라고 알게 됐으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지.

우리가 습지의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잘 사는 모습을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터이니, 그들을 고맙게 여기자꾸나. 아가, 우리 두루미는 습지와 자연의 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거라. 두루미와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지상의 낙원이 아니겠니? 지금 부모가 가르쳐 준 것, 머리에 가슴이 깊이 새겨서 새 봄에 훌륭한 어른 두루미로 독립하게 되기를, 흰 날개 모아 간절히 빈다. (*)   

박수택 기자ecopark@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