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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북스토리] 피네간의 경야

바람아님 2016. 2. 20. 19:18

(출처-조선일보 2015.11.29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김대식의 북스토리] 피네간의 경야
만약 지금 내가 당신에게 빨간 사과 하나를 보여주며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빨간 사과”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 눈에 보이는 사과의 색깔은 절대로 완벽한 “빨강”이 아니다. 
눈으로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진정한 사과의 색깔은 언제나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그 복잡한 색깔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빨강”이라는 
표현을 쓰고있을 뿐이다. 
언어의 해상도는 인식의 해상도보다 낮다. 모든 표현은 결국 왜곡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피겨스케이트를 할 수 있냐고. 
김연아 선수가 말로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연습을 많이 했다고. 수 만 번 넘어지고 쓰러졌다고? 

물론 진실은 수 천 만개에 달하는 김연아 선수의 팔, 다리 힘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줄들의 정교한 움직임과 타이밍은 그 누구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기에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게슈타인은 주장하지 않았던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한다고”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ueber muss man schweigen).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직접 읽을 수 없다. 텔레파시는 불가능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의 생각을 글과 말을 통해 전달할 수 있을까?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이야기>에선 의사인 아빠를 도와주다 처음으로 출생과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는 
어린 주인공이 소개된다. 

다시 평화로운 집에 도착한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겠다”라고. 
하지만 잠깐! 우리는 정말 머리 속에서 “나는 죽지 않겠다”라는 완벽한 문장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수 많은 생각과 기억과 희망과 두려움. 
지극히도 낮은 해상도의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애매모호하고 복잡하지 않은가?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즈>는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의 긴 하루 동안 벌어진 모든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을 단어와 단어 간의 나열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율리시즈를 완성한 조이스는 바로 그 다음 작품에 집중한다. 
잠에 들고 꿈에 빠진 자아의 밤을 이야기해주는 <피네간의 경야>다. 
<율리시즈>는 어렵지만 이해하기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피네간의 경야는 다르다. 

‘평범한’ 영어로 쓰인 율리시즈와는 달리 <경야>는 ‘만국어’로 작성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문장 속 단어 하나 하나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에, 모든 문장들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피네간의 경야는 본질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한 책이다. 

모든 번역판은 번역가 자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이스의 비서였던 소설가 
사뮈엘 베케트에 따르면 원고를 거의 완성한 조이스는 몇 주 동안 책의 마지막 단어를 고민했다고 한다. 

[김대식의 북스토리] 피네간의 경야표현의 한계를 시험하던 조이스의 최고 작품 <피네간의 경야>에 점을 찍을 마지막 단어. 
얼마나 대단한 단어가 탄생할 것일까? 
그런데 막상 조이스의 선택은 영어의 가장 기본인 “THE” 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지막 “THE”를 시작으로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을 수 있다. 
마치 인생과 우주가 순환의 논리를 따르듯 <피네간의 경야>는 무한으로 반복하고, 
무한으로 다양한 순환의 책인 것이다.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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