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13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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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잿더미로 만들고, 그 자리에 “Domus Aurea”(황금 집)라는 거대한 황궁을 지었다는 네로.
어머니와 아내를 죽이고, 스승 세네카를 자살로 몰았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반대로 가장 선한 황제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꼽힌다.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그는 부와
권력의 무의미를 강조한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끝없는 전쟁과 권력 싸움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밤마다 글을 쓴 황제들이 여러 명 더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고, 로마제국 마지막 비기독교
황제였던 율리아누스(“배교자 율리아누스)는 “턱수염을 증오하는 자들”(Misopogo)이라는 패러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책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다. 왜 하필 하드리아누스일까?
트라야누스 황제의 후임으로 제국 최고의 전성기에 살았던 그는 가장 “인간적인” 황제였기 때문이다.
“완벽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괴물” 네로와는 달리 하드리아누스는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이었다.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아닌, 언제나 자신이 추구한 모습보다 조금씩 부족한 인간적인 인간. 황제로 부임하고 쉴 새 없이
제국을 방황하던 하드리아누스. 그는 무엇을 찾아 떠돌아 다녔던 것일까? 더 큰 영토? 더 많은 부? 더 위대한 업적?
아니, 그는 어쩌면 단순히 작은, 아주 작은 행복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그 앞에 작은 행복이 등장한다.
안티누스라는 어린 그리스 소년. 소년과의 금지된 사랑을 위해 하드리아누스는 가족과 사회의 호평을 포기한다.
그리던 어느 날, 안티누스는 사라진다. 이집트 나일강에서 익사한 안티누스. 황제의 사랑을 질투하던 자의 짓이었을까?
아니면 늙고 냄새 나는 노인의 사랑이 부담스러웠던 소년의 자살이었을까?
안티누스의 죽음은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끝없는 슬픔에 잠긴 하드리아누스가 그를 신격화시키고 제국 곳곳에 안티누스
신전과 동상을 세우도록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아이러니 하게도 그리스로마 유물 중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동상은 그 어느 신,
영웅, 황제의 것이 아닌 그리스 시골 소년 안티누스의 동상이다.
시골 소년을 신으로 숭배한 황제. 그가 직접 쓴 회상록은 불행하게도 남아있지 않다. 안티누스의 동상으로 가득 찬
“하드리아누스 별장”을 1924년 처음 방문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사라진 황제의 회고록을 대신 쓰기로
결심한다.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회상록”은 1951년 드디어 완성된다.
유치한 그리스로마 신들을 더 이상 믿지 못했지만,
아직 기독교 신 역시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죽음의 자리에서 그는 “작은 영혼”이라는 시 하나를 남겼다고 한다:
작은 영혼 작은 떠돌이
작은 방랑자
이제 너는 어디에 머무를까
창백하고 혼자 남은
언제나 모든 것을 비웃기만 하던 너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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