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1.30 유석재 기자)
시민의 탄생|송호근 지음|민음사|548쪽|3만원
“이곳(서울 정동)에서 동대문까지 대로가 똑바로 뚫렸다.
상업과 조합의 거리다. …건물 층마다 특이한 진열대로 모든 직종과
상회가 들어서 있다. 종로는 불만 세력이 시위하러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1904년, 프랑스 철도 기술자 부르다레가 목격한 서울 종로 일대의 모습이다.
얼핏 보기에그저 심상한 도시 풍경의 묘사 같은 이 글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시민적(市民的) 원형의 발아’를 짚어낸다.
이미 근대의 전초병인 상인 계층이 배타적 동업조합을 결성해활동하고
있었으며,‘ 불만’과‘시위’라는단어는 사회가 중세적인 토양으로부터
결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전작‘인민의 탄생’을 잇는 이 책은 ‘근대 한국인’이란 존재가 과연 어떻게
출현했는가에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여론 형성과 결집의 영역’이라는
하버마스의 공론장(公걩場) 개념을 빌려온다. 공론장은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하는 정보와 상품의 유통 영역, 인쇄 매체, 모임,
토론 단체, 교통망 등 총체적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개항 이후 이 공론장을 독점했던 양반의 영향력이 쇠퇴하자‘지식인 공론’과
‘평민 공론장’이 서로 연대하면서 공명(共鳴)했고,
그 과정에서‘시민의식’이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민 공론장의 주체는 과연 누구였던가?
이미 한글 사용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새로운‘문해(文解) 인민’이 ‘자각 인민’으로 진화했으며, 조선의 근대 이행기에
종교·정치·문예의 영역에서 양반 공론장을 대체해나갔다는것이다.‘ 스스로 하늘의도를깨닫고실행할 수 있다’는 최제우의
동학사상이 이들을 키웠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한글이 국문의 지위로 격상되자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언문일치의 세계’가
도래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탄생한 근대적 사회와‘개인(個人)’은 향후 시민사회로 진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으나,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조선의
근대는갑작스럽게 차단된다. 이제‘시민’의 존재는 상상력의 공간인 문학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밖에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근대 이행’의 충분조건이라 할 경제적 하부구조에 대한 분석이약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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