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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독불장군 아베, 성장 과정의 비밀

바람아님 2016. 4. 4. 00:24
[중앙일보] 입력 2016.04.0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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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
노가미 다다오키 지음
김경철 옮김, 해냄
293쪽, 1만6000원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워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려는 아베 신조(安倍晉三·62)가 일본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베가 두 차례에 걸쳐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정치 명문가 혈통의 숙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산반(三ばん)’으로 불리는 지반·간판·가방을 모두 가져야 한다. 지반은 말 그대로 지역구를, 간판은 정치 명문가를, 가방은 자금동원 능력을 의미한다. 아베는 이 모든 것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

아베 집안에서는 자신을 포함해 모두 세 명의 총리가 배출됐다. 자신에 앞서 총리를 지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기시의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그들이다. 아베의 친할아버지 간(寬)은 중의원, 아버지 신타로(晉太郞)는 외상을 지냈다. 화려한 집안 내력만 보면 아베의 정치 코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신타로부터 50년 가까이 아베 집안을 취재해 온 저자는 아베가 독선적이고 고집스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원인을 성장 과정의 비밀에서 찾았다.

기시의 딸이자 아베의 어머니 요코(洋子)는 1년에 절반 이상 남편 신타로의 지역구 야마구치(山口)에 내려가 있어야 했다. 정치인 아내의 숙명이었다. 아베로선 부모의 품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유년 시절 유모 겸 양육교사 우메(ウメ)는 아베가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사랑에 굶주렸던 탓에 중학생이 돼서도 우메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메가 “넌 이제 중학생이잖니”라며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그 애는 그만큼 애정에 굶주렸던 거지요.”(우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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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A급 전범’으로 불리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따랐다. 군국주의에 저항한 청렴한 정치가인 친조부 아베 간에 대해서는 등을 돌렸다. [중앙포토]


소년 시절부터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다. 목욕시킬 때 무릎이 까만 것을 보고 우메가 “넘어졌구나. 아팠지”라고 물어도 “나 안 넘어졌어. 안 아파”라며 강한 척했다. 형제도 경쟁 대상이었다. 삼형제 가운데 형은 아베 가문을 잇고 동생은 외조부 기시 집안에 양자로 가면서 차남인 아베는 자신의 입지를 불안해했다. 이런 불안감은 생존 본능을 자극해 그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베는 신타로와도 원만하지 못했다. 지역구와 국회만 오가는 신타로가 어쩌다 도쿄 자택에 들러도 한 번 안아주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타로 역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간이 이혼하는 바람에 자녀에게 사랑을 표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탓이다. 더구나 숙제조차 잘 하지 않을 만큼 공부를 싫어했던 아베에게 “우리 집안은 도쿄대 법학부 진학이 숙명”이라고 강조하는 신타로는 가까이할 수 없는 아버지였다.

아베는 결국 무시험으로 진학하는 세이케이(成蹊)대에 입학했지만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력보다는 자신과의 친분을 중시하는 아베 내각에 도쿄대 출신이 적은 이유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아베 3차 내각에서 도쿄대 출신자는 역대 최소 수준인 4명에 그쳤다. 이런 편향은 그를 ‘버럭 총리’로 만들었다. 그는 야당과의 토론에서도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걸로 유명하다.

우파 성향 역시 성장 배경에 숨어 있다. 자존심이 강한 아베는 총리를 배출하지 못한 친가보다는 외조부 기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A급 전범에서 총리까지 오른 기시는 반공·친미 노선을 걸었는데 아베의 롤모델이었다. 국민 반발에도 집단적 자위권을 법안으로 관철시킨 것도 기시의 정치스타일을 닮았다. 저자는 이런 이유에서 아베의 정체성을 간파해야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아베의 성장 비밀이 주목받는 이유다.
 
지역구 대물림하는 일본

일본의 명문가 출신 정치인은 총리 되기가 훨씬 수월하다. 지역구를 물려받으면서 인맥과 자금력을 동시에 손에 넣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고 나오는 명문가라면 초등학교 반장 되듯 총리가 된다고 얘기 할 수 있을 정도다. 선거를 통해 한 표 차이로도 최고권력자의 당락이 결정되는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치 구조다. 더구나 일본 정계의 명문가는 경쟁하면서도 서로 끌고 당겨준다. 아베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과감하게 간사장으로 발탁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2년 고이즈미가 관방부(副)장관이던 아베를 데리고 방북해 김정일과 납치자 문제를 놓고 담판을 벌이고 돌아온 직후였다. 국민적 인기를 얻자 고이즈미는 아베를 자신의 후계자로 발탁했다.

김동호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