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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맨발로 뛰어라

바람아님 2016. 5. 21. 00:05
세계일보 2016.05.18. 21:28

기억력은 만인의 관심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기억력’을 치면 온갖 자료가 우수수 뜬다. 좀 낡은 버전이지만 여전히 웃기는 유머도 수북하다. 이런 식이다. “예쁜 여대생이 택시를 탔다. 한참을 가다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제가 아까 어디로 가자고 했죠?’ 택시기사가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깜짝이야! 아니 아가씨, 언제 타셨어요?’”

‘치매의 시대’여서 그럴까. 기억력과 치매를 연결짓는, 그리고 맘에 확 와 닿는 우스갯소리도 제법 많다. 이런 식이다. “내가 깜박하면 건망증이고 다른 사람이 깜박하면 치매다.”

치매 연령대는 아직 멀지만 이미 기억력에 자신 없는 이들이 널려 있다. 배우자 전화번호도 캄캄해 핸드폰 입력번호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자기 번호도 그렇고. 결혼기념일? 배우자 생일? 뭔 천재라고 기억하겠나. 서양도 마찬가지다. 최근 재번역본으로 나온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의 저자 조슈아 포어에 따르면 30세 이하 영국인 3명 중 1명은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타개책은 뭘까. 포어는 고대 시인 시모니데스의 비법을 권한다. “가상으로 건물을 지어 그곳에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을 이미지로 만들어 놓으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조언을 건넨 ‘현자’는 예전에도 많았다. 재작년 번역된 ‘레토릭’의 저자 샘 리스는 정확히 같은 조언을 했다. 플라톤, 키케로 등 옛 현인들의 권유도 흡사하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다. 세상사에 치여 살기도 바쁜 판국에 뭔 ‘기억의 궁전’을 짓는다는 말인가.


나름 참신한 소식이 있다. 맨발로 뛰면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미국 노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그렇다. 연구진은 지원자 72명을 한 번은 맨발로, 또 한 번은 운동화를 신고 뛰게 했다. 실험 참여자들이 뛰기 전과 후에 단기 기억을 뜻하는 ‘작업 기억’을 측정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났다. 맨발로 뛸 때의 기억력이 16% 좋아진 반면 신발을 신고 뛸 때는 기억 보강 효과가 안 나타난 것이다. 건망증, 치매를 피하려면 맨발로 뛸 일이란 유추해석이 가능하다.


‘기억의 궁전’을 짓는 것보단 아무래도 맨발로 뛰는 게 쉽다. 그렇다면, 건망증과 치매를 오가는 이들에게 새 비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 국민에게 못 볼 꼴만 골라서 보여주는 집권여당 사람들에겐 한번 권해도 좋을 처방이다. 언제 어디서든 맨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다. 혹시 유권자들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던 4·13총선의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그 정도는 기억해야 뭔가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이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