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에 대한 정치 개입은 양날의 칼이다. 정치가 앞장서 큰 틀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 구조조정의 고통도 줄이고 성과도 크게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시시콜콜 개입하면 구조조정의 배는 되레 산으로 간다. 예컨대 당장 고통을 호소하며 실업대책을 요구하는 노조를 여당이든 야당이든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노조 요구대로 초강력 실업대책을 밀어붙였다간 공연히 분란거리만 만들어 구조조정의 혼란과 고통이 더 크고 길어질 수 있다. 이미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사태 때 익히 경험했던 일이다.
여야 간 입장 차가 정쟁으로 번져 구조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벌써 대주주 책임론을 놓고 조짐이 엿보인다. 김종인 대표는 대주주 책임론을 강조했다. 산업은행부터 지분을 소각하고 부실 경영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좀 다르다. 기업 지배구조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는 쪽이다. 대주주가 산업은행(사실상 정부)인 대우조선과 사기업인 삼성·현대중공업을 같은 잣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숙련된 집도의에게 수술을 맡기듯, 정부가 지휘봉을 잡고 경제 논리에 맞춰 해치우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개입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정치 개입을 자초한 정부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당장 메스를 들이댈 듯하더니 재원 조달 논란에만 두 달 가까이 허비했다. 그러니 시장에선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김종인 대표는 “이 정부가 자금만 지원하고 시늉만 내다가 다음 정권으로 떠넘길 것”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국가 경제 재편의 시금석이다. 단순 기업 개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 계획을 치밀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지금처럼 산업은행 뒤에 숨어서 이것저것 눈치 보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경제부총리가 전권을 쥐고 지휘하되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뒤를 든든히 받쳐 줘야 한다.
정치권도 달라져야 한다. 여야 3당은 구조조정을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는 정책 협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마침 지난 20일 민생경제회의에서 여·야·정은 구조조정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큰 틀에 합의했다. 매달 한 차례씩 현안 점검회의도 열기로 했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여기서 용광로처럼 녹여내기 바란다. 이번 여야의 현장 방문이 표를 노린 것인지, 진짜 조선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것인지도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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