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는 서울대의 오늘을 ‘오만과 굴욕 현상’으로 표현했다. 수의학과 조모 교수가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로부터 금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실험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것을 그런 현상에 비유했다. ‘서울대 연구’라는 이름값을 이용하려 의도적으로 접근한 옥시에 코를 꿰 굴욕을 당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감사원의 서울대 법인화 감사 결과를 보면 그냥 넘길 말은 아닌 듯했다. 교수들이 총장 사인도 없이 사외이사를 겸직하며 억대를 챙긴 것은 ‘잘나가는데 어쩔래’ 하는 오만이요, 도덕적 해이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국민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대한민국의 인재 양성과 연구의 상징이어서다. 2011년 12월 국립 서울대를 법인으로 전환할 때는 날개도 달아줬다. 공무원 냄새를 추방하고 인사·재정·투자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해 글로벌 대학으로 뜀박질하라는 국민의 주문이었다. 정부 재정 지원도 늘렸고 교직원 신분도 똑같이 보장했다. 법인화법이 일종의 ‘혜택 자율화법’인 셈이었다. 현재 서울대 전임 교원은 2100여 명, 연구비 등을 합친 연간 총 예산은 1조4000억원으로 국내 대학 최대 규모다.
그러면 글로벌 성적표는 어떨까. 전국 60만 명 수험생 중 최상위 3100명을 거둬가는 건 그대로인데, 계속 경쟁력은 떨어진다. 실증적으로 보자. 영국 ‘타임스 고등교육(THE)’의 세계 대학 평가 순위는 재작년 50위에서 지난해 85위,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평가는 72위에서 105위로 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강조한 기초과학 연구도 미진하다. 미국 네이처의 네이처인덱스(연구 성과 평가지표)는 지난해 57위에서 올해 68위로 밀렸고,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라이덴 랭킹(인용빈도 상위 10% 논문 비율)도 544위로 포스텍(219위)과 이화여대(446위)에도 한참 뒤진다.
정부 4년제 대학 연구비 지원액의 10%(4500억원)나 쓸어가는 서울대가 왜 이럴까. 교육부의 직접적인 관치(官治)는 벗어났지만 지방대 교수의 지적처럼 프리미엄 덕에 연구비를 불려 양만 채웠지 질 관리는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다고 실용화가 우수한 것도 아니다. 대학 측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대학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154억원으로 중국 베이징대 14조원의 0.1%에 불과하다. 글로벌 명문대들처럼 자립을 강화할 고민은 않고 정부 곳간만 쳐다본 탓이 크다. 이처럼 종합평가·연구·실용화가 모두 뒷걸음질한 것은 굴욕인데 언제까지 평가의 공정성 탓만 할 작정인가.
서울대는 오만과 굴욕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세 가지만 제안한다. 먼저 평균 80%가 넘는 순혈주의를 혁파하라. 조사해 보니 외교학과는 교수 13명 중 11명, 심리학과는 12명 중 11명이 같은 과 선후배 사이다. 이런 끼리끼리 학풍으로 ‘지성의 날’을 세울 수 있는가. 글로벌 명문이 되려면 꼭 깨야 할 구각이다. 그 방안의 하나가 국제화다. 전임 교원 중 외국인 교수 비율이 4.9%로 10%대인 도쿄대나 20%대인 싱가포르국립대(강사 포함 시 50%)보다 턱없이 낮다. 세계적 흐름을 외면하는 건 또 다른 오만 아닌가. 연구 방식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잡식성 식욕을 버리고 원천기술과 기초·미래연구 등 국내 대학이 못하는 분야에 집중하며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라. 그게 기초과학을 살리고 노벨상 ‘0’의 굴욕을 씻는 길이다. 그러려면 성낙인 총장의 열정적인 리더십과 돌파력이 절실하다. 법인화 첫 총장인 자신에 대해 교수들이 중간평가를 한다고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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