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불알꽃을 보았다. 우리 집 바둑이의 불알과 너무도 닮았다. 바둑이는 좋겠다. 불알에도 꽃이 피니까.” 정호승 시인의 ‘개불알꽃’이다. 일제강점기에 열매가 ‘개의 음낭(犬の陰囊)’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겼다. ‘며느리밑씻개’ 역시 일본 이름인 ‘의붓자식밑씻개(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됐다. 어떻게 일본의 의붓자식이 이 땅에 와서 ‘며느리’로 살짝 둔갑했는지는 수수께끼다. 다만 줄기에 돋은 까칠한 가시가 단서가 될까. 화장지가 없었던 시절,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골탕먹이려고 이 가시가 돋은 들풀을 변소에 잔뜩 쌓아두었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하다. 불교하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중대가리풀’이라는 들풀도 있다. 동그란 열매가 마치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스님의 두상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어쨌거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붙인 들꽃 이름들을 답습해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복원작업 덕분에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꽃이름 두 가지가 있다. 광릉요강꽃과 미스김라일락이다. 광릉요강꽃은 부리가 요강을 닮았고, 뿌리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해서 약간은 남사스러운 이름이 붙었다. 미스김라일락도 많은 사연을 안고 있다. 1947년 미군정청 소속 식물학자인 엘윈 미더는 삼각산 부근에서 토종 라일락인 ‘정향(丁香)나무’를 발견하고는 종자 12개를 미국으로 가져간다. 새 품종의 라일락을 개발한 미더는 한국에서 자신을 도와준 타이피스트의 성을 붙여 미스김라일락이라 했다. 무단 유출된 정향나무의 개량종(미스김라일락)이 세계적인 꽃으로 자리 잡는 사이, 원종(정향나무)은 멸종위기에 놓였다. 최근 기자 출신 귀농인(김판수·53)이 원종인 정향나무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참에 정향나무의 명성을 되찾기 바란다. 꽃 모양이 ‘丁’자이고, 향기(香)가 있어서 정향나무라 했다. 미스김보다는 한결 나은 이름이다.
<이기환 ㅣ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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