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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세지는 美 통상 압력, "늘 하던 얘기"라며 한가한 정부

바람아님 2016. 6. 3. 00:10
조선일보 2016.06.02. 03:24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1일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간부들이 참석한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하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31일에는 장승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서울대 법대 교수)의 연임(連任)이 미국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사실이 외신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장 위원이 맡은 사건 대부분이 미국에 불리하게 결정 난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미국은 올 연초 우리 국회가 법률 회사를 만들 때 외국계 로펌 지분을 49%로 제한하자 리퍼트 대사가 직접 여의도로 달려가 항의했다. 미 상무부 차관보는 비공개로 공정위 부위원장을 만나 오라클 등 미국 기업 조사에 선처를 요구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말 우리나라를 중국·일본·대만과 함께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너무 많다"는 공개 경고였다. 이번 대사 강연과 WTO 인사 파동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게다가 제이컵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오늘 오후 방한해 내일 유일호 부총리와 장관급 회담을 한다. 대미 무역흑자와 환율 문제가 또다시 거론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미국 입장이 전과 다를 게 없다"는 한가한 소리나 하며 손을 놓고 있다. 미국 대사 강연도 의례적인 불만 표시이고 한·미 재무장관 회담도 별 게 없을 것이라고 한다. 높아지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긴장하는 모습조차 없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교·안보 관계는 물론 한·미 통상 관계도 격변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은 엊그제 "한·미 FTA로 무역적자가 240% 늘어났다"고 했다. 대미 무역흑자는 한·미 FTA 비준 당시인 2012년 12조원에서 작년 30조원이 됐다.


대다수 미국 유권자들이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엄청난 대미 흑자를 내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 이런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이다. 미국의 경고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깔아뭉갤 때가 아니다. 미국의 대선 이후까지 감안한 통상 전략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