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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지금, 경계선에서

바람아님 2016. 8. 4. 09:41

(출처-조선일보 2011.01.29  박돈규)



지금, 경계선에서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 쌤앤파커스/ 496쪽/2011년/ 2만2000원
  • 도서관 정보 - 331.54-ㅋ524ㅈ / [정독]인사자실(2동2층)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휴대전화 신제품이나 새로운 법안, 모기지(mortgage) 신상품을 만드는 데 
몇 주면 된다. 인간 게놈, 연료전지 같은 과학적 발견도 과거에 비하면 
놀랄 만큼 빠르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다. 
이 모든 새 정보를 처리해야 할 신체기관인 뇌는 진화하는 데 수백만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생물학적으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복잡성의 증가는 현대사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기원전 6000년부터 서기 900년 사이에 번성한 마야문명은 정교한 역법(曆法)을 
발명했고, 수학에 제로(0)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며, 운하·댐·제방을 건설해 물을 
다스렸다. 하지만 마야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1100여년 전 돌연 지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극심한 가뭄과 바이러스로 갑자기 멸종했다는 학설도 있고, 
파벌 간의 내전(內戰)으로 몰락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 사회생물학자인 저자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 행동의 유전적 기원을 탐구해온 그는 
"더디게 진행되는 인간의 진화와 빠른 사회발전 사이의 격차(gap)가 답보 상태와 쇠퇴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마야문명이 최후에 직면했던 기후변화·식량부족·바이러스·인구증가 같은 문제들이 그 사회가 감당하고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는 것이다. 
마야·로마·이집트·크메르·명(明)·비잔틴 왕국의 붕괴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도 그것으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인류가 지금 몰락과 진보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말한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진단이다. 
세계적 불황, 강력한 유행성 바이러스, 테러리즘의 증대, 치솟는 범죄율, 기후 변화, 자원 고갈, 핵확산 등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위험을 경고하는 '파수꾼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몰락하는 초기 징후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정체 상태가 나타난다. 
크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고도 과거에 작고 단순한 문제를 푸는 데 썼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 세대의 문제는 다음 세대로 전가된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두 번째 징후가 나타나는데,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없을 때 사실 대신 믿음에 매달리곤 했다
저자는 "급류(急流)에 휘말린 사회는 헛된 몸부림을 거듭하다 지쳐 무너지고 만다"고 말한다.

네안데르탈인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 떨어뜨린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500만년 뒤의 미래로 간다면 우리의 뇌 역시 그 세계에 적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컨베이어 벨트의 움직임이 빨라지면 초콜릿을 상자에 담으려다 놓치게 되는 상황과 흡사하다.

저자는 한반도·중동·아프리카에서 충돌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생물학적 이유도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이념의 앙금과 함께 인간 유기체가 여전히 영역성(領域性)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생물학적 명령은 아직도 인간의 DNA에 도사리고 있고, 위협이 감지되면 작동한다는 것이다.

진화는 느리고 지속적이며 정밀하지 않은 과정이다. 
현실이 우리에게 부과한 도전을 극복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과 우리의 유전적 본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고 
어긋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 적응을 위한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이유다. 
즉 우리가 가진 것이 환경에 비추어 최선이 아닐 때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복잡성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뭘까. 
규모를 줄이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민첩한 신생기업이 대기업보다 신속하고 창의적인 경우가 많다. 
자원보다 중요한 것이 크기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자동차를 한 대 더 사거나 새로운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건 복잡성을 자초하는 길이다. 
저자는 "경보음에 귀를 열어야 하고 사실과 믿음을 구별하면서 통찰을 이용해 해법에 다가가야 한다"면서 
"불합리한 반대가 심해질수록 통찰의 발달은 지체된다"고 말한다.

폭이 넓은 책이다.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 나아간다는 다윈의 '종의 기원'
진화론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DNA의 이중나선구조
"유전은 우리가 집단 안에서나 개인으로서 행동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유전자는 자신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만을 바란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간 세상의 복잡성 등을 흥미롭게 살핀다. 
"기하급수적 변화와 성장으로 인해 인류에게는 문제를 파악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가 차갑지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기고자:박돈규  본문자수:2566   표/그림/사진 유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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