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영명 개정…국제사회 배포해 우리 식물 알려
'금강초롱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식물로 모양만큼이나 이름도 아름답다. 그러나 이 꽃의 학명(學名)은 다르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다. 경술국치의 주역인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이 들어갔으며 하나부사의 한문식 이름을 따 '화방초'(花房草)로 불리기도 했다.
'섬초롱꽃'(Campanula takesimana) 역시 마찬가지다. 이 꽃은 세계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학명에는 일본인들이 독도를 부르는 '다케시마'가 붙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한국 자생식물 4천73종 가운데 '재퍼니스' '다케시마' 등 일본식 표현이 들어간 식물은 315종에 이른다.
하나의 식물은 학명, 영명(英名), 국명(國名) 등 3개 이름을 갖는다. 학명은 국제적인 약속이고 영명은 학계 등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명칭이다. 국명은 각국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예를 들어 섬벚나무의 학명은 'Prunus takesimensis Nakai'고 영명은 'Takeshima flowering cherry'다. 오리(五里)마다 심어 이름 붙여진 오리나무는 학명이 'Alnus japonica Steud', 영명은 'Japanese alder'다.
이처럼 우리나라 식물인데도 일본 관련 이름이 들어간 것은 국내 식물 분류체계를 일본인 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최초로 마련했으며 이런 식물 이름의 상당수가 일본강점기에 명명됐기 때문이다.
식물 학명에는 발견자 이름이 들어가는데 섬벚나무 학명 끝에 'NaKai'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나무는 1918년 나카이가 울릉도에서 발견해 발표했다.
국명 가운데도 일제강점기에 이름이 붙여져 우리나라 식물을 비하한 것이 적지 않다.
식물 이름에는 고산지역을 의미하는 '두메', 진짜라는 의미의 '참', 다른 종이지만 비슷하게 생겼다는 의미의 '나도' 등 다양한 접두어를 붙여 식물의 형태, 서식환경, 특성 등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부 식물의 이름 앞에 '개' '뱀' '새' 등을 붙여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친근하지 않은 이명(異名)으로 불러, 혐오감을 느끼게 만든 경우가 많다.
일본인들이 정원수로 많이 이용할 만큼 좋아하는 단풍나무의 경우 일본 것은 '참단풍'으로 부르고 한국의 것은 '노인단풍'으로 불러 차별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쓸모없는 식물이거나 동물의 기관 일부를 닮았을 때 '개'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경우가 있지만 국내 널리 분포하고 있는 침엽수인 개비자나무(Cephalotaxus koreana Nakai)에도 굳이 개(犬)를 앞에 붙여 비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식물 이름 앞에 붙은 개라는 단어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개비자나무를 좀비자나무로, 개옷나무를 털옻나무로, 개다래를 말다래 등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이유에서 지난해부터 민간에서는 우리 식물을 비하한 이름(국명)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개'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개'가 이미 발견된 식물과 유사하다는 데서 단순히 붙여진 것이며, 의도적으로 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학계를 중심으로 우리 식물 이름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제명명규약에 따라 학명은 바꿀 수 없다. 이 때문에 식물의 영명을 고쳐 목록을 만든 뒤 국제사회에 퍼트리는 작업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말 영명을 대부분 보완하거나 고친 뒤 목록을 책으로 만들어 각국 주재 대사관과 외국 식물원 등에 보냈다.
'Takeshima flowering cherry'인 섬벚나무의 영명을 'Ulleungdo flowering cherry'로 바꾸고, 오리나무를 'Japanese alder'에서 'East Asian alder'로 고친 게 그 예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우리 식물 이름의 일제 잔재는 힘없던 시대의 서러움"이라며 "학계와 민간에서 우리 식물 이름을 바르게 쓰고 국제 사회에도 알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원예업계도 수출입 때 바뀐 이름을 기준으로 삼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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