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움직이는 거울, 흔들리는 한국을 비추다

바람아님 2016. 8. 16. 08:32

(출처-조선일보 2016.08.16 김미리 기자)

작가 이용백, 8년만에 국내 개인전, 사건 넘치는 세상 빗댄 작품 내놔
"세상 변화 속도 못 따라가는 예술, 지나치게 숙성된 작품만 넘쳐… 예술가에게도 '잰걸음' 필요하죠"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울 8개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마주한 거울에 반사돼 맺힌 이미지들만으로도 어찔한데 거울까지 움직인다. 
지진 난 듯 거울 속 바닥이 불룩 솟고 가운데 둔 오죽(烏竹·검은 대나무)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것만 같다. 
수평·수직의 시각 축이 무너지니 이내 속이 메스꺼워졌다.

"요즘처럼 한국이 낯설 때가 없어요. 비상식적인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아요. 
하도 답답해서 가만히 있어도 흔들리는 세상을 표현해 봤습니다." 
'낯선 산책'이라 이름 붙인 설치 작품 앞에 작가 이용백(50)이 섰다. 
현기증 나는 세상이라. 작품을 포장한 미사여구를 걷어낼 필요 없이 몸으로 메시지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용백은 이렇게 번뜩이면서도 현실에 발붙인 명쾌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미디어와 설치 작품으로 공감을 이끌어온 작가다.

“내가 흔들리는지 세상이 흔들리는지 헷갈리죠?”
움직이는 거울로 만든 설치 작품‘낯선 산책’가운데에서 작가 이용백이 말했다. 
거울이 기울어지면서 그 안에 비친 바닥이 솟았다 꺼지는 듯하다. 
어지러운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다. /박상훈 기자

201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였던 그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신관에서 개인전 '낯선 산책'을 연다. 
8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남다른 시선으로 일상에서 포착한 흥미진진한 작품 7점이 전시됐다. 
위는 계단식, 아래는 둥그렇게 처리된 4.3m 대형 조각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위성 지도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지도에서 보안상 이유로 남북한 군사분계선 주변을 하얗게 처리한 부분을 확대해 조각으로 만들었다. 
소재는 전기 차단에 쓰이는 절연재. 단절된 남북을 상징한다. 
작가는 "IT 최대 강국인데 인터넷으로 우리의 풍경을 볼 수 없다니 아이러니 아닌가. 
입체적인 현상을 2D 평면처럼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고방식 같기도 하다"며 
"대개 조각은 시각을 옮기는 것인데, 이 작품은 관념을 조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며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 '엔젤 솔저'도 전시장 한쪽에 있다. 
예비군 훈련 전날 술 마시던 후배의 푸념에서 영감받은 작품. 
언뜻 보면 꽃무덤 같지만 자세히 보면 꽃무늬 군복으로 위장한 군인이 서서히 움직인다. '꽃'과 '군인'. 
대척점에 놓여 있을 법한 두 요소를 결합해 한글로 보면 한끝 차이인 '전사(군인)'를 '천사(엔젤)'로 둔갑시키면서 
반전(反戰)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영상작품 '지구는 어떤 힘으로 자전하는가'는 작지만 강력하다. 
공기총으로 플라스틱 지구본을 쏴 지구본이 회전하는 모습을 담았다. 
작가는 총기허가증을 따서 직접 작업실에서 총을 쏘며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엔 작업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총알이 조준한 지역을 벗어나자 사람들은 깔깔 웃으면서 시시덕댄다. 
아무렇지 않게 무력을 행사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우리 안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작정한 듯 각종 사건 사고 넘치는 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쏟아낸 이용백은 예술과 세상의 속도 차를 꼬집었다.
"예술이 세상의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요. 
큰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면 3년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죠. 
음식으로 치면 '날 것'의 생기 있는 작품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숙성돼 곧 있으면 부패할 것 같은 예술이 넘쳐요. 
제가 봐도 지겨운데 관객은 오죽할까." 
이 거침없는 작가는 "요리처럼 작품도 빨리 후다닥 해치우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며 
"예술가에게도 사회에 즉각 즉각 반응하는 '잰걸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시 9월 25일까지. (02)720-1524



설치 작품 작가 이용백(50) 개인전 '낯선 산책'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신관

전시 9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