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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책읽기] [15] 백인의 원죄와 흑인의 분노

바람아님 2016. 9. 27. 13:21

(조선일보 2016.09.27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15]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미국의 첫 흑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장편 '빌러비드(Beloved)'에서 
베이비 서그스라는 흑인은 노예 시절에 아이 여덟을 낳았는데 낳을 때마다 손가락을 한 번 잡아볼 뿐 
얼굴은 보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아이는 다 주인이 가져가 버려 얼굴을 보면 이별의 아픔이 더 커지기 
때문에. 그녀의 며느리 세스는 자유주(州)로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히게 되자 두 살짜리 딸에게 노예의 
사슬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딸의 목을 톱으로 자른다. 그 딸이 혼령으로 나타나 집을 소란스럽게 하고 
나중에는 현신(現身)해서 어머니로부터 죗값을 받아낸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200년 넘도록 연인원 6000만명의 흑인 노예를 부렸다. 
노예는 노예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부족 전쟁의 포로 등을 사서 대서양을 넘어 실어왔다. 
약 15%의 인간 '화물'이 학대와 질병과 기아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비위생·비인간적이었던 '미들 패시지(middle passage)'의
참혹상은 모든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잊지 못할 것이다. 
노예들이 당한 학대와 수모 역시 인간의 행위로 믿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신세계를 찾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인데 
그들이 그토록 신을 모독하는 일을 저질렀다. 
그 죄과가 오늘날의 흑인 사태다. 유럽과 동양에서 이민 간 이들은 대부분 고군분투해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뤘지만 
흑인은 대다수가 빈민가에서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대로 홀어미가 아비 없는 자식의 숫자대로 받는 육아 수당으로 
살아가는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벽은 피부색에 따라 그 두께와 재질이 다르다. 
흑인들은 아직도 철저한 차별 속에서 대다수가 자포자기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대물림된 그들의 분노는 점화를 기다리는 농축 가스처럼 가슴에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경관의 총격으로 흑인이 사망할 때마다  흑인 폭동이 일어나곤 한다. 
한편 경찰은 경찰대로 너무 많은 동료가 흑인에게 흉기에 찔리고 총을 맞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과잉 방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킹 목사라는 위대한 흑인 지도자가 이룩한 흑인 인권 신장이 반세기 동안 흑인들을 다독였지만 
이제는 완전한 평등에 대한 요구가 폭발할 때가 되었다. 
모쪼록 또 한 사람의 킹 목사가 출현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각주> - middle passage : (아프리카 서해안과 서인도 제도 사이의) 중간 항로






빌러비드(토니 모리슨 장편소설)

토니 모리슨/ 최인자/ 문학동네/ 2015/ 469 p

808-ㅁ748-116/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