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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말기 靑-외교부 '대북정책 엇박자' 심했다

바람아님 2016. 10. 17. 00:00

노무현정부 말기 靑-외교부 '대북정책 엇박자' 심했다

국민일보 2016.10.16. 21:32

'송민순 회고록' 파문.. 2007년 무슨 일 있었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노무현정부 임기 말인 2007년 말에는 청와대와 외교안보라인 사이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혼선과 엇박자가 계속 드러났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직후였다.

당시 외교안보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7년 말 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던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안보실)과 외교통상부는 북한 관련 여러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면서 대립했다. 특히 대북 포용정책 기조 아래 전향적인 남북관계를 이어가려 했던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한·미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중시했던 송 장관의 3대 1 대립 구도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였다.


당시 외교안보 부처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16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주체 등을 놓고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서로 다른 입장을 내면서 정부 내에서 혼선이 자주 일어났다”며 “청와대에서 대북정책을 주도하던 인사들과 외교통상부 사이에 협정 효력과 주체 등에 대한 의견 충돌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에서 북한 관련 회의가 열릴 때마다 송 장관이 수세에 몰렸다는 게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원 보이스’가 필수적인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공개적으로 충돌한 한 적도 있었다. 한국전쟁 종전 선언 시기와 성격을 놓고 백 실장과 송 장관이 맞붙은 것이다. 발단은 그해 10월 백 실장이 한 외부 강연에서 “남북 정상선언문에 담긴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 선언은 평화협상을 시작하자는 관련국들의 정치·상징적 선언을 의미한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 발언은 3∼4자 정상들이 한국전쟁 종전과 함께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는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 또는 미국 입장이 견지해 왔던 종전 선언 성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송 장관은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반박했다. 송 장관은 “평화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것은 종전 선언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종전을 하려면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휴전에서 평화로 들어가려면 휴전을 끝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종전 선언 시기에 대해서도 당시 청와대는 ‘현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외교통상부는 ‘북한 비핵화가 구체화된 이후 가능하다’고 맞섰다. 노무현정부 임기 말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무리한 정책 밀어붙이기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한다.


2007년 말 북한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 안보실·통일부·국정원과 외교부 사이의 대립 분위기는 그해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회고록에 따르면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문 실장이 “남북 경로로 (북한 의사를) 확인하자”고 결론내렸다. 당시 이 장관, 김 원장, 백 실장은 기권을 주장했고, 찬성을 주장했던 송 장관은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고 회고록에 썼다. 송 장관이 자필로 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뒤 다시 열린 회의에선 김 원장이 북한 의사를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 의사를 확인한 뒤엔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에 투표하고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라고 한 뒤 기권을 결정했다고 회고록은 전했다.


남혁상 기자


송민순 “그런 걸 북한에 물어보면 어떡하나, 대답 뻔한데”

[중앙일보] 입력 2016.10.16 08:20
중앙SUNDAY 지령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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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3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무회의에 앞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그런 걸 대놓고 (북한에) 물어보면 어떡하나. 나올 대답은 뻔한데. 좀 멀리 보고 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참 논란이 오고 간 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논쟁할 수가 없었다. 한밤에 청와대를 나서면서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빙하는 움직인다』 451쪽)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에 북한의 의사를 사전에 물어봤다는 내용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송민순(북한대학원대 총장)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야권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 과정을 주도했다는 당시 내용을 상세히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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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권결의 표결, 책임 있는 입장 취하길”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4년 사이에 한국은 이 결의안(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불참-기권-찬성-기권으로 가는 지그재그 행보를 걸었다”고 썼다. 2003년 표결 불참, 2004·2005년에는 계속 기권하다 2006년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부는 2007년 다시 기권으로 입장을 바꿨다. 송 전 장관이 문제를 제기하며 생생한 기록을 풀어낸 시점은 2007년 11월 21일 유엔 인권결의안 표결을 엿새 앞둔 11월 15일부터다.

회고록에 따르면 결의안 문제가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정식으로 논의됐지만 찬성을 주장하는 송 전 장관과 달리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대통령 안보실장은 기권을 주장했다.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 등 외교라인에선 찬성 입장을 펴던 때다.

마침 이때 서울에선 남북 총리회담(11월 14~16일)이 열리고 있었다. 16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로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회의를 다시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날 저녁 송 전 장관은 A4 용지 4장에 만년필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직접 편지를 썼고 밤 10시쯤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회고록에 소개된 편지의 요지는 이랬다.
 
“지난해 우리는 처음으로 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그때도 북한이 소리만 냈지, 실제 자신들이 필요하면 수시로 우리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이미 우리의 주도로 결의안 내용을 많이 완화시킨 것도 북한이 알고 있습니다. 기권할 경우 앞으로 남은 기간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 협상을 출범시키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막막합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이틀이 지난 11월 18일 일요일 저녁에 장관들을 다시 소집했다. 주무장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 보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때 김만복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고 다른 세 사람(이재정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백종천 안보실장)이 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저녁 대통령 숙소에서 백 전 실장이 그날 오후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며 쪽지를 건넸다.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反)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북남 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송 전 장관의 편지를 받고 “그동안 외교부가 여러 나라를 설득해 결의안 문안까지 완화시켰는데 지금 와서 기권하자면 민망할 것이다. 그런데 찬성을 해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 엊그제 북한 총리에게 이 문제를 가볍게 언급했더니 ‘일 없다’고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던데 좀 더 챙겨볼 걸 그랬다”고 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회의를 지시했을 만큼 노 전 대통령의 고민이 깊었던 흔적이 회고록 곳곳에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의견을 확인한 뒤엔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 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통령도 기분이 착잡한 것 같았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이 유엔에서는 찬성표를 던져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살리고 그 후 장관을 해임해 북한에 대한 입지도 살리는 고육지계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그게 오히려 맞습니다. 지금 이 방식은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좋지 않고 대외관계 전반에도 해롭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런데 이렇게까지 물어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북한에)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결국 21일 새벽(한국시간) 유럽연합(EU)과 일본이 공동 제출한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이 총회 제3위원회에서 ‘찬성 97, 반대 23, 기권 60’으로 통과됐다. 한국 정부는 기권했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표결 직전 입장을 결정했다고 썼다.

당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저녁 늦게 송민순 외교장관과 백종천 안보실장이 대북결의안에 대해 보고해 노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정상회담 등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반기문 대통령 가능성 염두에 둔것 아닌가”
북한에 의사를 물어보자고 제안한 인물로 지목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회고록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김 전 원장은 “제가 제안한 사실이 없다. 그런(북한의 의사를 확인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고록 공개가) 시기적으로 묘한 느낌이 있다”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통령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외교라인들은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심윤조(전 새누리당 의원) 당시 외교부 차관보는 통화에서 “차관보 시절 내 기억과 전부 일치한다”며 “당시 청와대 회의에서 김 전 원장이 ‘인권결의안 처리와 관련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 부분도 송 전 장관이 분명하게 외교부 간부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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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송 전 장관은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문제를 본인의 외교관 커리어상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육필로 편지를 써서 인권결의안 찬성 입장을 주장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표를 내겠다고 할 정도의 사람이기에 회고록 내용이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기권을 주장하는) 통일부·국정원·안보실의 입장을 수용해서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지장이 있을 일은 가급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회의 때마다 분위기는 1대 다수의 싸움이었다”며 “감성적인 송 전 장관이 광화문에서 한남동 공관까지 출입기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울분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