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5 신동흔 기자)
美 '포천' 편집장 제프 콜빈
창의력 원천 인간의 공감 능력… AI·로봇이 절대 따라올 수 없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타인과 교감하는 능력이 경쟁력
인간은 과소평가 되었다|제프 콜빈 지음|신동숙 옮김|
한스미디어|352쪽|1만6000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구글 본사는 구내식당 음식이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짜이면서도 최고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직원들이 식당에 몰려 3~4분씩 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꽃피기 때문이다.
식탁도 일부러 긴 테이블을 둬서 타부서와 어울리게 하고, 간격도 의자를 빼다 부딪힐 정도로
좁게 배치했다. 그렇게 부딪혀 누군가를 알게 되는 것을 '구글 범프(Google bump)'라 부른다.
야후는 2012년 재택근무를 없애고 사무실 근무로 정책을 바꾸면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는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복도나 카페테리아에서의 대화,
즉석 회의 등에서 나오므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인공지능 알파고를 만든 구글, 네트워크로 집과 사무실을 연결한 재택근무 유행을 선도했던 야후가 오히려 직원들 간의
눈을 맞추는 대화, 그것도 '우연한 상호행위(serendipitous interaction)'를 중시하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으로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격주간 종합 경제지인 '포천' 편집장인 제프 콜빈은 인간 창의력의 비밀이 상호행위를 통해 공감(共感)하는
능력에 숨어 있다고 본다. 이는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결코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이다.
로봇과 AI가 불러올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지만,
저자는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기계를 이기려 하거나 기계가 인간보다 못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매달리지 말라"며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애초에 이세돌은 바둑에서 '계산기계'인 알파고를 이길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탐구해야 한다.
그는 "뛰어난 웨이터는 자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손님이 짜증 났는지, 피곤한지,
어리둥절해하는지, 신이 났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응대한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토록 인간이 누릴 능력"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서울 강남 학원가의 학부모 대상 강연에서도 'AI가 불러올 미래 직업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자녀를 억지로 공대에 진학시켜야 할까.
그는 한 벤처기업가의 말을 빌려 "전 세계적으로 공대생이 10배는 늘게 되어 있다.
기초적인 공학기술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라며 "차라리 소설을 읽고 스토리텔링 능력을 기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실제로 뉴욕 의대 등 전 세계 유명 의과대학에선 의사 지망생들이 관찰·분석·공감·자기반성 기술을 키울 수 있도록
소설 읽기를 권장한다. IBM의 왓슨이 환자를 진단하는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환자와 교감하는 '인간 의사'를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정작 디지털화된 환경은 이런 능력을 키우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도 매일 평균 4.5시간씩 디지털 기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상호작용을 할 시간이 줄었다.
SNS는 감성 개발을 방해한다. 저자는 "얼굴 표정과 시선, 목소리 톤, 몸짓언어 등 비(非)언어적 감정신호를 통한
상호행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시대를 바꾼 제품들은 교감(交感) 속에서
만들어졌다.
창조는 고독한 천재들이나 하는 것 아니냐고? 그들이야말로 교감의 천재였다.
저자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C.S. 루이스와 J.R.R.
톨킨 등 두 명이 짝을 이뤄 위대한 창조물을 낸 사람들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누구보다 직원들의 교감을 중시했기에 픽사의 사옥을 지을 때
대형 아트리움(건물 중앙에 유리 등으로 지붕을 만든 넓은 공간) 한가운데 페,
사내 우편함, 회의실을 배치해 인재들이 계속 마주치게 했다. 심지어 화장실도
아트리움 옆에 초대형으로 두 곳만 만들려다가 직원들 반대로 무산됐다.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남성의 뇌는 '체계화'하는데 적합하게 진화해왔고, 여성의 뇌는 '공감'하는데
적합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남자 아이들은 한 살만
되어도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치는 동영상을 쳐다보고,
여자 아이들은 화면 속 사람 얼굴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앞으로는 "남자 아이들에게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미국 국방부도 이미 군사훈련 과정에 교감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포함시켰다.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라는 말까지 유행하는
한국에서 "앞으로는 '무엇을 아는지'보다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은 과도한 상상일 뿐이다.
AI는 애초에 인간을 이길수 없다.
'공감' 능력이 없어 눈을 보며 소통할 수도, 감정을 읽어낼 수도 없다.
인간들의 다양한 '상호작용'이야말로 인류가 현재의 문명을 일궈낸
비밀스러운 능력이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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