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ㆍ이과 통합 교육은 그가 15년 전부터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그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누구보다 앞장서 강조해 왔는데 내년 통합 교육 실시를 앞두고 돌연 “이럴 바에는 통합하지 않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21세기가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과학과 수학 교육을 누구나 받게 하자는 게 본래 취지였는데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통합은 하되 과학과 수학은 어려우니 그 부담을 줄이는 것은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자가 복잡한 사회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뭘까. 혹시 정치를 꿈꾸나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하자 최근에 떠오른 생각이라면서 "양심"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6.10.26 10:01
21세기 과학의 시대…누구나 과학과 수학 교육 받게 하자는 게 본래 목표 통합한다면서 오히려 과학과 수학을 더 적게 배울 수 있는 방향으로 잘못 가
자연과학이 묻는 질문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하우(how), 하나는 와이(why). 어떻게와 왜를 묻는 거거든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만을 물어요. 그런데 진짜 과학은 왜를 묻는 거거든요. 왜 사과가 떨어질까. 뉴턴이 왜를 물었지, 어떻게 사과가 떨러질지를 묻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는 항상 왜를 묻는 것. 이런 점에서 저는 서울대가 관악산으로 이사 가면서 건물의 위치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대가 인문대 쪽에 같이 디자인되었어야 하는데 억울합니다.”
그러고 제가 서울대로 돌아왔는데, 서울대에 조문섭 교수라고 지질학과에 계세요. 저랑 동기인데, 그 양반이 강의하는 것을 언젠가 듣는데, 우리 한반도가 땅이 한 덩어리가 아니랍니다, 땅 두 덩어리가 붙은 거랍니다. 이번에 터진 것도 그런 거잖아요. 한반도가 몇 개의 절편처럼 되어 있는데, 그게 어긋나면 지진이잖아요.
지진만 문제가 아니고 화산도 문제 잖아요. 백두산. 언제도 터질 수 있는 거고, 조짐이 별로 안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고, 우리도 대비해야 됩니다.”
국립생태원에는 호젓한 산책길이 두 곳 있는데 최재천이 좋아하는 이들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다윈의 길, 제인 구달 길.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생태학자의 길’을 만든 것이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 것. 인간이 한없이 기고만장할 뻔 했는데 다윈 덕택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재천의 설명문도 만나볼 수 있다. 시간 나는 대로 이 길을 걸으려고 하지만 계속 일정이 이어져 그럴 틈을 내기 힘들다고 한다. 2년 전인 2014년에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82세) 박사가 이곳에 와서 봉헌식을 가졌고 기념으로 발 프린팅 동판도 만들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21세기 과학의 시대…누구나 과학과 수학 교육 받게 하자는 게 본래 목표 통합한다면서 오히려 과학과 수학을 더 적게 배울 수 있는 방향으로 잘못 가
문과와 이과의 통합도 15년 전부터 주장해왔는데 내년부터 실시되는 문ㆍ이과 통합을 어떻게 보나. 방향은 잘 잡고 나가는 겁니까.
“방향은 해야 될 일이었죠. 너무 말도 안 되게 늦었죠. 방향은 제대로 잡혔는데 세부 내역을 보면 걱정스럽다.”
어떤 점이 걱정되죠.
“이게 사실 2년 전 할 수 있었는데 지금 하게 된 거잖아요. 학부모들의 오해가 있었죠. 문과 공부하는 거랑 이과 공부하는 거랑 통합하면 둘 다를 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신 거예요. 그게 아니라고 하기 위해서 이번에 교육부가 들고 나온 게 ‘문ㆍ이과 통합형 수업’이잖아요.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 ‘통합형’이 문제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힘들어할까봐 통합형에서 수학과 과학을 줄여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또 글을 쓰고 강의도 하고 하는 게 '그럴 거면 하지말자' 이게 요즘 주장하는 거예요.”
이제 와서 통합에 반대하는 겁니까.
“문과 이과를 통합한다는 뜻은, 이건 제가 대놓고 얘기한 겁니다, 이과로의 통합입니다. 미안한 얘긴데, 이걸 공개적으로 발표했다가 거의 쌍욕까지 들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문과로 통합하는 게 아니다, 21세기가 과학의 세기이기 때문에, 과학을 모르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통합의 노력을 하는 거지, 통합 하자 그래놓고 과학이나 수학은 힘드니까 좀 안 해도 되게 하자, 이거는 그나마 몇 안 되는 이과생도 제대로 못 길러내게 되는 건데 거기서 무슨 국가경쟁력이 생기겠어요. 그건 아니거든요. 모든 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을 공부하게 하기 위해 통합을 하는 거지, 그래서 문과 공부만 하는 학생을 없애자는 게 취지지, 이과 공부를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게 취지가 아니거든요.”
문과생이 수학과 과학을 꼭 공부해야 할 이유가 뭔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엔 환갑 잔치 하느냐 마느냐가 우리 수명이었으니 직업 하나만 가지고도 적당히 살고 다들 죽었어요. 그런데 이제 100세를 삽니다. 100세를 사는데 60에 은퇴하고 40년을 놀고 먹을 수 있나, 이거 그냥 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11년 전에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 정년 제도를 없애라고 했다가 그때는 무지하게 두들겨 맞았는데, 정년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이해하거든요. 95세나 100세까지 누구나 다 일을 해야 되요, 그래서 약간의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의 경제가 유지돼요. 노동인구가 15세에서 60세라고 하여 그 사람들만 일을 하고 그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60세 이상 사람들과 15세 미만 아이들을 다 먹여 살리는 구도로는 도저히 안 되거든요. 이제 곧 이 노동인구가 양쪽 인구보다 더 적어지는데 그러면 한 사람이 벌어서 두 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건데 이게 가능한 얘기가 아니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뭐죠.
“한 개인이 직업 하나를 가지고 100세까지 살 수 있는가,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거거든요. 대기업 들어가서 나는 100세까지 죽어도 안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 마음이 아니잖아요. 40대 중반에 직장을 나왔다, 그럼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하고, 그렇게 찾다 보면 평생 직업을 7~8개 갖게 된다는 거죠. 근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진짜 수학 공부 한 번도 안 하고 과학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문과 공부만 한 사람이 직업 7~8개를 아주 좋은 직업으로 얻을 수 있느냐, 확률적으로 이거는 거의 불가능한 겁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제가 얘기하는 통섭형 인재가 아니면 직업을 옮겨 다니기 힘들어진 시대가 된 거죠.”
이과 공부를 나중에 재취업할 때 하면 안 되나요.
“그래요 이과 공부를 언제 할 거냐가 문제가 되는데요. 평생 직업을 여러 개 갈아타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는 70대에 들어가서 나노 과학 공부하겠다 그러면 제가 말릴게요. 안 되죠. 그때가 되면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하지 않으면 습득하기가 어려운 분야에요. 70대에 저는 법학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80대에 변호사나 법관을 하세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80대에 물리학자가 되겠다면 그 꿈 깨셔야 된다는 거죠. 문ㆍ이과 통합을 하겠다는 것은 뭐냐고 하면, 지금 10대 후반 20대 후반의 우리 아이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 못하고 일단 통합 과정을 하겠다고 하고나서는 교육부가 자꾸 수학 과학에 물타기를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이건 아닙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문과 이과를 나눠놓고 그나마 반이라도 과학자나 기술자를 키워야 되죠. 이럴 거면 이과를 남겨두는 게 낫다. 15년을 통합하자고 부르짖은 사람이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이 되는 건데 이거 심각하거든요.”
이게 학부모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인문학자들도 있어요. 통섭에는 동의하는데, 최 원장님의 하버드대 스승인 윌슨의 통섭은 자연과학 위주라는 거죠. 이러다 인문학 다 죽는 것 아니냐 이런 의혹의 시선이 있거든요.
“제 책에서 여러 번 한 얘기인데, 인문학은 평생 하는 학문이고, 자연과학적 툴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그래서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끔 그 무기도 같이 갖추자는 것이지, 인문학 없애자는 애기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최근에 제가 ‘무동학교’ 교장 선생님이 됐어요. ‘인문학 해서 죄송하다’는 ‘문송’ 사람들을 모아놓고 통섭형 교육을 시켜서 경쟁력을 높여보자고 해서 이렇게 시작한 학교인데 저한테 교장을 하라고 한 거죠. 그래서 나는 자연과학자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문학을 공격한 점도 있고 이과로 통합하는 얘기를 하고 했는데 내가 교장이 될 수 없지 않느냐고 고사했지만 강하게 요청을 해서 제가 수락을 했어요. 그래서 그게 다음달에 2기에 들어가는데 잘 되고 있어요.
무슨 얘기냐면 사실은 저는 인문학을 폄하 하거나 축소시킬 의사는 진짜 털끝만큼도 없어요. 모든 학문은 결국은 인문학이거든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말이 되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어쩌다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너무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 이게 원래 과학과 기술이거든요, ‘과’자는 빼버리고 한동안은 과학ㆍ기술이라고 가운데 점을 찍다가 과학기술이 됐는데, 그러다 보니 과학은 형용사가 되어버렸어요. 기술을 기술답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된 거죠. 과학적 기술 이 정도 된 거죠. 게다가 대학은 어떻습니까. 옛날에 우리가 동숭동에 서울대가 있을 때는 지금 자연대라고 부르는 거와 인문대라고 부르는 학과가 문리대 안에 함께 있었잖아요. 같은 집안이었잖아요, 그래서 저도 철학 과에서 수업 듣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관악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중앙도서관을 가운데 딱 두고 인문사회대는 위아래로 붙여놓고 자연대는 중앙도서관 반대편에 갖다가 세웠어요. 그리고 자연대 뒤쪽에 거대한 공룡 공대가 떡 들어 와서 자연대를 품는 형국으로 발전했잖아요. 자연대는 공대의 시녀가 된 거죠. 공학을 잘하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와 같은 학문이 됐는데 저는 정말 그거에 대해서 너무너무 억울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과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사실은 저는 인문학을 폄하 하거나 축소시킬 의사는 진짜 털끝만큼도 없어요. 모든 학문은 결국은 인문학이거든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말이 되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어쩌다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너무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 이게 원래 과학과 기술이거든요, ‘과’자는 빼버리고 한동안은 과학ㆍ기술이라고 가운데 점을 찍다가 과학기술이 됐는데, 그러다 보니 과학은 형용사가 되어버렸어요. 기술을 기술답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된 거죠. 과학적 기술 이 정도 된 거죠. 게다가 대학은 어떻습니까. 옛날에 우리가 동숭동에 서울대가 있을 때는 지금 자연대라고 부르는 거와 인문대라고 부르는 학과가 문리대 안에 함께 있었잖아요. 같은 집안이었잖아요, 그래서 저도 철학 과에서 수업 듣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관악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중앙도서관을 가운데 딱 두고 인문사회대는 위아래로 붙여놓고 자연대는 중앙도서관 반대편에 갖다가 세웠어요. 그리고 자연대 뒤쪽에 거대한 공룡 공대가 떡 들어 와서 자연대를 품는 형국으로 발전했잖아요. 자연대는 공대의 시녀가 된 거죠. 공학을 잘하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와 같은 학문이 됐는데 저는 정말 그거에 대해서 너무너무 억울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과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인문학이다?
“도정일 교수가 저와 대담집을 내면서 인문학은 질문을 하는 학문이라고 얘기하셨는데, 그때 제가 반박을 못했어요. 세월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과학도 질문하는 학문입니다. 기술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학문이고, 과학은 질문을 하는 학문이에요. 자연은 왜 이럴까, 과학철학 하는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그런 얘기 했던데 ‘truth’를 잘못 번역했다고 그랬는데(중앙일보 ‘지성과 산책’ 인터뷰 9월 28일자 16면 참조), 저랑 굉장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걸 읽고 전율을 느꼈는데, 이 양반이 나랑 똑같이 생각했구나, 과학은 진상을 파악하는 거고 질문을 하는 거지, 과학이 그걸 찾아내서 답을 딱딱 꺼내 놓으려는 게 아니거든요. 어차피 답이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대 사람들은 어쨌든 답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하는 거지만 자연과학은 질문하는 학문이거든요.
자연과학이 묻는 질문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하우(how), 하나는 와이(why). 어떻게와 왜를 묻는 거거든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만을 물어요. 그런데 진짜 과학은 왜를 묻는 거거든요. 왜 사과가 떨어질까. 뉴턴이 왜를 물었지, 어떻게 사과가 떨러질지를 묻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는 항상 왜를 묻는 것. 이런 점에서 저는 서울대가 관악산으로 이사 가면서 건물의 위치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대가 인문대 쪽에 같이 디자인되었어야 하는데 억울합니다.”
올해 초 한국에 인공지능 바람이 불었습니다. 진화생물학자로서 인공지능의 발달을 어떻게 보나.
“인공지능이란 게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빨리 오는 것은 제가 볼 때 아닌 것 같고요, 그런 시대가 오려면 시간이 저희한테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 인간이 찾아낼 것 같아요. 그 알파고 개발한 친구가 카이스트에서 한 얘기가 저한테는 와 닿았는데 ‘인공지능이 축구선수 메시는 아니다(혼자서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잘 부리면 된다.’고 했는데 저는 인간이 그런 지혜를 발휘할 거라고 봅니다.”
한반도가 이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연과학자로서 어떻게 보나.
“저는 안전지대 아니라는 것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79년에 갔는데 펜테이트에서 제일 처음 만난 선배가 누구냐면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퇴임하신 박창업 교수셨어요. 그 교수님이 그때 대학원에 계셨는데, 선배님 무슨 공부하세요 그러니까 ‘지진 공부합니다’. 쓸데없는 거 하시네요 한국은 지진도 없는데, 그러니까 ‘지진이 왜 없어요, 옛날 신라 때도 지진이 있었고요, 요즘 좀 뜸 한 거죠’. 저는 그때 이미 알았어요. 지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고 제가 서울대로 돌아왔는데, 서울대에 조문섭 교수라고 지질학과에 계세요. 저랑 동기인데, 그 양반이 강의하는 것을 언젠가 듣는데, 우리 한반도가 땅이 한 덩어리가 아니랍니다, 땅 두 덩어리가 붙은 거랍니다. 이번에 터진 것도 그런 거잖아요. 한반도가 몇 개의 절편처럼 되어 있는데, 그게 어긋나면 지진이잖아요.
지진만 문제가 아니고 화산도 문제 잖아요. 백두산. 언제도 터질 수 있는 거고, 조짐이 별로 안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고, 우리도 대비해야 됩니다.”
젊은이를 위한 책을 많이 내고 강연을 하면서 ‘방황하라’고 주문을 해왔는데 본인은 정작 방황해 본 경험이 있는지.
“저는 방황 많이 했죠. 대학 제대로 못 들어갔고. 고등학교 때 퍽 착실한 학생이었다가 재수, 대학시절 내내 참 공부 안하고 방황 많이 했어요. 근데 살아놓고 보니까 방황이 너무 값진 거였더라고요. 내가 그 방황을 안했더라면 굉장히 좁은 분야에 파묻혀 살았을 텐데,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겠죠 제가 잘했으면, 그거보다는 제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롭잖아요. 제가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살고, 저만큼 그 흥미진진한 사람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그런 건 다 어떻게 보면 그 방황에서 겪은 경험의 폭 때문에 제 삶에 어마어마한 양식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너무 일찍 자기 길 찾아가는 사람 보면 조금 안됐다. 저 양반이 40대 중반 가면 그때 잘못하면 방황하는데 그때 방황하면 문제가 심각하거든요, 차라리 10대 20대 방황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재수 시절입니까.
“그럴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좌절을 크게 해보니까. 그런데 그게 바닥에 한번 떨어져 보니까 그 이후로 어지간한 바닥은 바닥처럼 안 느껴져서 사는 데 굉장히 힘이 됐어요.”
행복이 뭐라고 보는가.
“언젠가 라디오에서 얘기했을 때 많이들 캡처했다고 하는데, 미국 소설가 조디 피쿠가 소설에서 쓴 얘기인데요. 행복 공식이란 걸 얘기하더라고요. ‘결과 나누기 기대’랍니다. 대부분 사람은 분자를 키우느라고 열심히 산다. 업적을 만들고. 그 공식의 매력은 분모를 조금만 줄여도 답이 엄청 커져요. 분모를 조금만 줄이면 별로 어렵지 않거든요. 지금 대한민국에 이렇게 갈등이 많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발톱을 아예 꺼내놓고 살잖아요, 내가 조금만 나를 줄이면 되게 행복해져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진화생물학적인 생각입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아무도 미래를 예측 못하거든요. 저는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열심히 살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거고. 가까운 미래 한 20년 정도는 우리 청년들을 위해 살고 싶어요. 요즘 학생들 보면 제가 대학 때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 아이들이 일할 곳이 없다, 이거는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거예요. 제 주제에 능력이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젊은이들이 놀이터처럼 신나게 일하고 즐기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정치권 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국립생태원에는 호젓한 산책길이 두 곳 있는데 최재천이 좋아하는 이들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다윈의 길, 제인 구달 길.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생태학자의 길’을 만든 것이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 것. 인간이 한없이 기고만장할 뻔 했는데 다윈 덕택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재천의 설명문도 만나볼 수 있다. 시간 나는 대로 이 길을 걸으려고 하지만 계속 일정이 이어져 그럴 틈을 내기 힘들다고 한다. 2년 전인 2014년에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82세) 박사가 이곳에 와서 봉헌식을 가졌고 기념으로 발 프린팅 동판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근년에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를 별로 들어보지를 못합니다. 그게 그냥 양심이에요. 옛날에는 참 많이 들었는데,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이 있어봐라, 양심 얘기를 되게 많이 했는데 요즘에 일상에서 양심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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