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학사에 있어서 실존했던 의사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전국시대의 의학자 편작(扁鵲:성은 진·秦, 이름은 완·緩, 자는 월인·越人)을 꼽을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편작과 창공(倉公)이라는 두 의사의 전기를 마련해 ‘편작창공열전’을 남겼다. 아마 훌륭한 의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한다. 편작은 약 2500년 전 발해군(오늘날 허베이(河北)성 동남부와 산둥(山東)성 서북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명의의 원조 격으로 그 의술이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정도여서 사람들은 그에게 ‘신의(神醫)’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편작은 ‘괵’이라는 나라에 갔다가, 모두가 다 죽었다고 인정하여 장례를 치르기 직전에 있던 괵의 태자를 살려냄으로써 명성을 한껏 드날렸다. 이 일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작은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낼 수 있다고 여기기에 이른다. 하지만 편작은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다만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내가 일어날 수 있게 해주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편작의 여러 신비로운 의료 행위 가운데서 제(齊)나라 환후(桓侯)의 병세를 진단한 일은 가장 의미심장하다. 당시 편작은 환후의 병세를 간파하고는 하루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환후는 편작이 자기 명성 때문에 멀쩡한 자신을 환자 취급한다며 무시했다.
편작은 거듭거듭 경고했다. 환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번째로 환후를 찾은 편작은 환후의 얼굴만 보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어리둥절해진 환후가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으니 편작은 “병이 피부에 있는 동안에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소. 혈맥에 있을 때는 침이나 뜸으로 고칠 수 있고, 장과 위에 침투했어도 약주로 고칠 수 있소. 하지만 병이 골수에 미치면 저승신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소. 그런데 지금 군의 병이 골수에까지 파고들어 있어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외다”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다시 닷새가 지난 뒤 환후는 병으로 쓰러졌다. 황급히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찾았으나 편작은 이미 괵 나라를 떠난 뒤였다. 결국 환후는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이 고사를 소개한 데 이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성인이 병의 징후를 예견하여 명의로 하여금 일찌감치 치료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병도 고칠 수 있고 몸도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병이 많음을 걱정하고, 의원은 치료법이 적음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섯 가지 불치병이 있다고들 한다.
첫째는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이다.
둘째는 몸(건강)은 생각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이다.
셋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넷째는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다섯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여섯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불치병이다.
이런 것 가운데 하나라도 있으면 병은 좀처럼 낫기 어렵다.”
자신의 심신에 병이 생겼다는 조짐을 느끼면 심신을 편하게 하고 자신의 언행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좋은 의사를 찾아 상담하면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요지다. 이런 점에서 민간에 전하는 편작과 관련된 다음 일화는 예방의 중요성과 치료보다는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의사가 명의라는 점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위(魏)나라 군주가 편작에게 “당신 3형제는 모두 의술에 정통하다는데 대체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나오?”라고 물었다.
그런데 편작이 뜻밖에도 “큰 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다음이며, 제가 가장 떨어집니다” 하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위왕은 다시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의 명성이 가장 뛰어나단 말이오?” 하고 물었다.
이에 편작은 “큰 형님의 의술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형님은 병의 원인을 사전에 제거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명성이 외부로 전해질 수가 없지요. 그리고 둘째 형님의 의술은 병의 초기 증세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가볍게 치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명성이 마을 정도에 머물 뿐이지요. 저는 중병만 주로 치료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맥에다 침을 꽂고 피를 뽑고 피부에 약을 붙이고 수술을 하는 등 법석을 떨기 때문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명성이 전국에 알려질 수밖에요”라고 대답했다.
인간사가 대개 그렇듯 일의 과정에는 징후(徵候)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또, 많은 경험을 통해 그 징후를 예견(豫見)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경험하기 전에 일의 기미와 징후를 살펴 대비하는, 다시 말해 예방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는 다가올 일의 징후가 내재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병원과 의사들이 한 농부의 죽음을 놓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봐도 빤한 사인(死因)을 놓고 우왕좌왕, 설왕설래,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이 히포크라테스의 고귀한 선서는 팽개친 채 정작 편작이 말하는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첫 번째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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