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31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일상의 느슨한 관계 통해 즐거움 얻는 경우도 많은데
낯선 접촉 무조건 의심만 하면 작은 불 끄려다 사회적 비용 막대
우리와 타인 간의 심리적 벽 낮아질 때에 행복감 높아져
좋은 사회적 경험.
이것이 개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많은 연구가 보여준다.
행복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간의 관계를 심리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가족, 연인, 절친과 같은 긴밀한 관계(strong tie),
그리고 스쳐가며 가벼운 대화 정도를 나누는 느슨한 관계(weak tie)가 있다.
타 부서 직원이라든지 단골 가게 아저씨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깊은 관계가 필요하지만, 일상의 느슨한 관계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에플리(Epley) 교수팀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이 부분을 과소평가하며 산다.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미국 사람들은 외곽에 살며 기차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연구팀은 출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일부에게는 열차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했고(고독 조건),
다른 이들에게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가벼운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보도록 부탁했다(대화 조건).
기차 출발 전, 고독(또는 대화) 조건에서 얼마나 즐거움을 느낄 것 같은지를 예상하도록 했고,
도착 후에는 그들의 실제 기분을 측정했다.
예상과 실제 경험은 달랐다.
사람들은 출근길에 낯선 이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기차에서 내릴 때는 대화 조건 사람들의 행복감이 더 높았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아마 대수롭지 않은 수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관계로 경험하는 단편적인 시간들을 모두 모으면 하루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별것 아닌 순간들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양의 시간이다.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행복한 사회가 가진 인간관계 특성 중 하나는 이런 느슨한 관계와 긴밀한 관계 사이의 구분이 비교적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을 여행할 때 한국 사람들은 가끔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친근하게 말은 거는 사람, 툭툭 치며 농담하는 사람, 먹던 빵을 뜯어 건네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이전에 어디서 만났던 사람인가'라는 착각을 순간적으로 줄 정도로 친근하다.
상대가 누구든 쉽게 다가서서 서로 대화하며 농담하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인간적 모습이 부러울 때가 있다.
우리는 모든 애정과 관심을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 붓고,
울타리 밖의 사람들과는 가벼운 대화를 하는 것조차 어색해한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친구들이 몇 시에 오는지를 확인하고서야 출발한다.
혼자 앉아 앞에 놓인 컵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우리'와 '남' 간의 심리적 벽을 이토록 높이 세워 놓고 살까? 어쩌면 그것은
대부분의 타인을 잠재적 친구나 동반자보다는 경쟁자 혹은 감시자로 생각하는 구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메시지들이 이런 부정적 관점을 강화할 수 있다. 한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 전화 사기(詐欺) 방지를
목적으로 만든 이 광고는 자기보호의 최상의 방법은 낯선 접촉을 무조건 '의심'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취지는 이해되지만, 작은 불을 끄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광고다.
서로 적극적으로 의심하라는 캠페인을 펼치는 사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농담하며 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생기기 어렵다.
모두가 낮아지길 바라는 담에 오히려 벽돌 하나를 더 얹는 느낌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2017.11.20) 긴 휴가, 준비되셨나요?(2017.09.25) "소셜미디어 속 멋진 인생에 흔들리지 마라"(2017.07.24) 축구든 인생이든 즐겨라 (2017.06.05)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2017.04.24) 행복,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몫 (조선일보 2017.03.13) 설날 최고의 덕담, "더 많이 움직이세요"(조선일보 2017.01.25)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배부른 돼지'에게도 잔치는 필요하다(조선일보 2016. 04.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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