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바람아님 2016. 11. 14. 08:54

(조선일보 2016.11.14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前 외교부 장관)


트럼프 당선 후 미국은 갈라졌다… 우리가 아는 미국과 우리가 몰랐던 미국으로 

국내외 심각한 도전 감당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모든 실질 권한을 새 리더십에게 이양해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前 외교부 장관

우리는 과연 '멋진 신세계'로 진입하고 있는가? 

트럼프의 당선으로 새 세상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세상이 다가올지는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승리는 한국에 풀어야 할 몇 가지의 중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첫째, 외교·안보 문제다. 

트럼프 후보는 고립주의, 즉 미국이 해외 개입을 줄이고 국내 경제에 몰두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했다. 

특히 동맹 그 자체보다는 경비 부담 문제에 더 집중할 것이다. 

이는 한국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질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취임 후 '동맹은 지지하는데 방위 분담금은 전액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지 모른다. 

한국이 불응하면 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말할 수도 있다. 그 경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돈을 더 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고 핵무장의 길로 나설 것인가? 

한반도 분쟁에 자동 개입하기 싫다며 전시작전권을 가져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미 동맹이 약화되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가? 

원미친중(遠美親中)으로 나가야 하는가?


새로운 상황 변화 속에서 이런 수많은 도전은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까지는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들이 참모들 간 난상토론도 없이 대통령 한마디로 결정되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통령이 외교·안보 문제에 천리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모나 장관 그리고 최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깊이 있는 토론으로 최선의 전략·전술을 채택하고 실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의 대통령이 계속 외교·안보를 이끌어간다면 그러한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그는 의전에는 강할지 몰라도 전략·전술 감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둘째, 경제 문제다. 

트럼프 정부는 한·미 통상과 관련하여 관세를 인상하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한 쌍무 차원의 도전은 협상을 통해 적절히 해결한다고 하자.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 차원에서 미국발 보호무역 경쟁이 시작되면 가장 피해를 볼 국가는 한국처럼 무역으로 생존해온 나라들일 것이다. 

그래서 보호무역의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중요한 것이 그 국가의 경제 체질이 얼마나 강하고 유연한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지금 허약하고 경직돼 있으며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해운산업 구조조정 하나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가계 부채는 대책 없이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다. 

그뿐인가?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이 재벌과 권력 실세 간 유착 고리가 시장경제의 공정 경쟁 원칙과 효율성을 좀먹고 

경제 체질을 약화하고 있다. 

그러한 경제 시스템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한마디로 경제 리더십도 실종됐다.


셋째, 국내 정치 문제다. 

트럼프 당선 직후 어느 미국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두 개로 갈라졌다. 우리가 아는 미국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미국으로." 

물론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가 알았던 동·서부, 대도시 중심의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중부, 소도시, 농촌 중심의 

미국이 권력을 잡았다. 이러한 분열에 인종 간 세대 간 갈등이 중첩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1980년대 초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바람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계층들을 충분히 품어 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집중 공략해 성공한 중서부의 쇠락한 산업지대에서는 제조업 황폐와 함께 지역사회 공동체마저 

깨져나갔는데 기성 정치권은 이것을 방치했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기성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유사한 도전에 부딪혀 있다. 

경제의 양극화 속에 중산층은 약화되고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 불만은 팽배해가고 있는데 정치권은 무능과 

무기력증만을 보이고 있다. 그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가장 주도적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대통령 스스로가 최순실 게이트의 한 중심에 서 있고 부패와 정경 유착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상태에서 분노한 국민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당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뿐만 아니라 지난 4년 동안의 박 대통령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볼 때 트럼프 시대의 심각한 도전들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 2선 후퇴나 사퇴를 통해 한시라도 빨리 모든 실질 권한을 새 리더십에게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