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2.01 선우정 논설위원)
이제 풀리는구나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했으니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당장 사퇴 시점을 정하면 됐다.
탄핵보다 국가적 손실이 작고 대통령 퇴임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도 동의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야당은 제안을 거부했다. 꼼수·기만·함정·술책·패악질 등 거친 비난까지 쏟아냈다.
▶게임이론의 핵심 모형인 '죄수의 딜레마'는 합리적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협조하면 이익이 가장 크고 협조하지 않으면 이익이 가장 작은 상황에선 협조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협조하지 않아 둘 다 손해 보는 일이 벌어진다. 상대가 배신해 저 혼자 손해 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결국 상대를 믿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이 모형은 냉전 때 미·소의 군비 경쟁을 설명하는 데 유용했다.
남·북한 문제에도 적용됐다. 지금은 우리 국회를 설명하는데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어느 야당 대표가 담화 직후 대통령을 "무서운 분"이라고 했다. "함정"이라고도 했다.
이런 방어적 자세의 이면에서 심각한 불신의 흔적을 발견한다.
여야가 협력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고 얻는 이익도 크다.
하지만 칸막이 속 죄수들처럼 그들에겐 협력할 능력이 없다.
저쪽이 배신해 혼자 손해 볼 바엔 다 같이 손발 묶고 있자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걸 알고 그들이 풀 수 없는 문제를 국회에 넘겼으니 함정이라는 것인가.
실제로 대통령이 이런 계산을 했다면 '무서운 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계산과 달리 여야가 협력하면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대통령이 '죄수의 딜레마'를 믿고 운명을 걸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책임 총리 카드를 내밀었을 때도 야당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걷어찼다.
국회를 분열시키려는 대통령의 술책이라고 했다.
그 이면에는 자기들끼리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불행한 사실이 숨어 있다.
한 번 합의로 대통령 퇴진이라는 국정 수습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데도 못 한다.
그 바탕에 불신이 있다.
여의도에 퍼져 있는 불신은 모든 문제를 파국으로 몬다.
▶게임이론은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여러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포크(folk) 정리'란 이론이 있다.
국가가 있는 이상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정치 게임이라면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협력적 자세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장기적 안목'이 결국 선진 정치와 후진 정치를 가른다.
대통령이 내민 카드가 다시 한 번 우리 국회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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