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관심이 작았다. 19세기 말엽 잠시 ‘은자의 왕국’에 호기심을 가졌었지만 빈곤하고 부존자원도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조선을 잊었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을 차지하려 다툰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고립주의에 기울고 영토적 야심이 적었던 강대국이다. 태평양 건너편 동북아시아로 진출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를 해두보(beachhead)로 여기지 않았다. 해두보는 대륙으로 진출하려 할 때야 뜻을 지닌다. 미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놓친 근본적 이유가 거기 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뒤 남한을 떠맡은 뒤에도 이어졌다. 1947년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한국의 군사적 가치를 아주 낮게 평가한 보고서를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보냈고, 이듬해 애치슨은 한국과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49년 미군은 소수 군사고문관들만 남기고 철수했다. 심지어 한국전쟁 중에도 전황이 불리해지면 일본으로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은 일본만 우방으로 삼으면 서태평양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겨왔다. 지금도 그렇다.
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유화 정책을 펴면서 미국은 한·미 동맹을 실질적으로 폐기했다. 한국에 제공한 기밀들이 곧바로 북한에 흘러가는 것을 알자, 한국에 기밀들을 제공하기를 멈췄다. 마침내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혈맹’ 한국을 베트남전쟁의 적국 베트남보다 한 단계 아래 우방으로 규정했다. 이제 미국은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전략적 투자를 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