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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96] 시어머니와 장모

바람아님 2016. 12. 6. 06:30

(조선일보 2016.12.06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용산역에서 장항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쉬엄쉬엄 느리고 정겨운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기차가 충남 끝자락 장항역에 멈췄다 다시 무거운 몸을 추슬러 출발하면 왼편 창 너머 저만치 

홀연 초현대식 돔들이 나타난다. 

마치 영화 '마션'에나 나옴직한 이 돔들은 바로 국립생태원의 대표 전시관 에코리움(Ecorium)이다. 

이곳은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 등 세계 5대 기후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작은 지구'다. 작은 열대개미들이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나무 이파리를 물고 행군하는 진풍경과 더불어 

곧 열대 난(蘭) 수백 종이 형형색색 꽃을 피우며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추워지면 스키장 빼고는 

딱히 갈 곳이 없는 이 땅에 최상의 겨울 관광지로 자신 있게 권한다.


후텁지근한 열대관을 빠져나와 사막관으로 들어서면 까칠한 선인장이 반긴다. 

한 아름 공 모양의 이 선인장은 매무새만 까칠한 게 아니라 이름도 까칠하다. '시어머니 방석'이라니? 

공식 명칭은 '황금 술통 선인장(golden barrel cactus)'이지만 흔히 'mother-in-law's cactus'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서양에서는 '장모님 방석'으로 통하지만, 그렇게 번역하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듯싶어 논의 끝에 

'시어머니 방석'이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지만, 

서양에서는 장모와 사위 관계가 껄끄럽다. 

'사위가 고우면 요강 분지를 쓴다'거나 '사위 반찬은 장모 눈썹 밑에 있다'는 속담처럼 그야말로 '백년손' 대접을 받는 사위가 

서양에서는 장모를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구시렁거린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처가 풍속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단 금지옥엽 외동딸에 대한 사랑이 도를 넘거나 사위를 친아들 삼으려는 장인이 문제지만, 까칠한 사위를 바라보는 

장모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조만간 국립생태원의 푯말을 서양처럼 '장모님 방석'으로 되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