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29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1859년 11월 24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됐다.
모두 1250권을 찍었는데 주문이 쇄도해 이틀 전에 이미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1월에 3000권을 인쇄한 제2판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썼다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책이 아님을 감안하면 엄청난 반응이었다.
'종의 기원'은 전통적인 동물학과 식물학은 물론 발생학, 생리학 그리고 지질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이론과 정보를 총망라한 저술이다.
굳이 내가 유행시킨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다윈은 완벽한 의미의 통섭형 인재다.
흥미롭게도 다윈은 내가 '통섭'으로 번역한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고안하고 그 개념을 설명한 윌리엄 휴얼
(William Whewell)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휴얼의 저서 '귀납 과학의 철학'(1847)과 '귀납 과학의 역사'(1857)에 관한
천문학자 허셜(J.F.W. Herschel)의 서평을 읽고 다윈은 그의 노트에 꼭 읽어야겠다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휴얼 역시 1837년 런던지질학회 회장을 맡으며 이듬해 다윈을 총무로 영입했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허셜과 휴얼은 졸지에 비판자로 돌변했다.
그나마 허셜은 다윈이 신의 영역을 인정하고 비중 있게 다룬다면 그의 이론을 일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한 데 반해
휴얼은 다윈의 이론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철학자이자 근본주의 신학자였던 휴얼에게 다윈은 신의 설계를 이해조차 못 하는
자격 미달의 얼치기 이론생물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학장으로 있던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 도서관에 '종의 기원'을
비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종의 기원'의 속표지에는 자연신학에 관한 휴얼의 인용문이 실려 있다.
'물질계에 관한 한… 현상은 신의 권능이 일일이 개입해서가 아니라 일반 법칙의 정립에 의해 일어난다.'
통섭의 언덕에 오르려면 우선 아집의 늪에서 헤어나야 한다. 열려 있어야 어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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