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3년 하고도 달 반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공무원들은 잦은 전보 발령에 대비해 절대로 짐을 만들지 않는다던데, 나는 그걸 할 줄 몰라
책 상자만 스무 개 넘게 연구실에 쌓였다.
스스로를 '책벌(冊閥)'이라 부르며 책 모으기를 끔찍이 좋아하는 나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에 털리는 아날로그의 비애를 절절히 겪었다.
나는 미국 유학 15년 동안 연구 시간의 족히 10%는 복사기 앞에서 보낸 듯싶다.
조교 수당의 거의 전부를 복사 카드에 집어넣고 허구한 날 논문들을 복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저자들에게 논문 별쇄본을 요청하는 카드도 열심히 썼다.
우편 요금은 고맙게도 학과 사무실에서 부담해줬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아 주제별로 분류해 가지런히 정리한 논문이 4층짜리 파일 캐비닛 4개에 달했다.
하버드 시절에는 논문을 찾으러 도서관 건물까지 가기 싫어 내 방으로 오는 교수들도 있었다.
나는 그 많은 논문을 한 편도 빠뜨리지 않고 죄다 바리바리 싸 들고 귀국길에 올랐다.
과학 후진국인 조국의 발전을 위한다는 웅지를 품고.
첫 10년 동안에는 그런대로 효용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나는 연구실 논문 파일 캐비닛을 열어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일부러 캐비닛까지 가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논문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엔 줄을 서서 기다리던 공중전화도 휴대폰에 밀려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20년까지현재 7만대 정도인 공중전화를 4만대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30년 넘어 애지중지 보관했던 논문들이 상자 속으로
내던져지는 걸 보는 내 마음이 왜 이리 허전한지 모르겠다.
새것은 종종 편리함을 앞세워 옛것을 몰아낸다.
그런데 왜 편리함은 좀처럼 편안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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