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에서 자식을 돌보는 일은 대체로 암컷 몫이다.
하지만 새와 물고기는 좀 다르다.
알이 수정되자마자 몸 밖으로 내보내는 새들은 자연스레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는다.
그래서 새들의 번식 구조는 대개 일부일처제다.
물속에서 체외수정을 하는 물고기는 암컷이 먼저 알을 낳고 달아나는 바람에 알 위로 정액을 뿌린 수컷이 뒤에 남아
홀로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제법 많다. 포유동물의 수컷은 짝짓기를 마치기 무섭게 표표히 자리를 뜬다.
수정란을 몸 밖에 내보내는 게 못 미더워 그냥 몸속에 품기로 작정한 포유동물의 암컷은 자식 양육을 혼자 고스란히 떠안았다.
곤충이나 거미류는 기본적으로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곤충 중에서 수컷이 자식을 양육하는 예는 물속에 사는 물자라와 물장군 정도로 극히 드물다.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잡는 거미의 경우에는 암컷이 알집을 거미줄에 매달아 놓고 지킨다.
수컷은 근처에 얼씬거리기도 어렵다. 짝짓기를 꿈꾸며 접근하다 자칫 먹이가 되기도 한다.
요행 짝짓기에 성공한 수컷도 정사를 마친 후 괜히 얼쩡거리다간 잡혀먹히기 일쑤다.
상황이 이쯤 되면 거미 아빠가 자식 양육에 참여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국제학술지 '동물 행동(Animal Behavior)' 최신호에는 이런 난국에도 자식을 돌보는 아빠 거미의 행동이 최초로 보고되었다.
중남미 열대에 서식하는 이 왕거미의 수컷은 짝짓기를 마친 후 암컷의 거미줄 위에 천막 같은 거미줄을 치고 머물며
알집 주위의 거미줄을 수리하기도 하고 알집 위에 떨어진 빗방울을 털어내기도 한다.
야외에서 조사한 거미줄 중 3분의 2 이상에서 아빠 거미 혼자 알집과 새끼들을 돌보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긴 다리를 빼곤 먹을 게 별로 없는 수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흐벅진 몸매를 지닌 암컷들이 너무 자주
포식동물에 잡혀먹히는 바람에 아빠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식 양육을 떠맡은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 사회도 그렇지만 급해져야 아빠들이 나선다.
거미와 거미줄.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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