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최재천의자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00] 붉은 닭의 해

바람아님 2017. 1. 3. 07:43

(조선일보 2017.01.0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붉은 닭의 해가 밝았다. 

닭은 원래 야생종인 들닭을 가축화한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붉은 들닭(red jungle fowl)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여느 닭의 해보다 적통을 뽐내기 좋은 해인 셈이다.


12간지(干支)의 유래는 불교·도교·유교에 걸쳐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일 요즘 만든다면 이른바 형평성 논란으로 엄청 시끄러울 듯싶다. 

전체 열두 간지 중 무려 아홉을 포유동물이 독식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작 뱀과 닭이 파충류와 조류를 대표할 따름이다. 

뱀은 파충류의 대표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 닭이 새를 대표하는 건 포유류 편중과 더불어 비리의 구린내가 물씬거린다.


지구상에는 약 1만종의 새가 있는데 무려 9200여종이 일부일처제를 채택한다. 

유전자 검사가 일상화하면서 암컷들의 은밀한 외도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가 압도적이다. 

한편 포유류의 기본 번식제도인 일부다처제를 채택한 새는 2% 미만이다. 

닭이 바로 그 별난 새들 중의 하나다. 수탉 한 마리가 암탉 여럿을 거느린다.


이 땅의 닭들은 지금 유사 이래 최대 고비를 겪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연방 애꿎은 철새에게 손가락질하느라 바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닭이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데 있다.

세상 어느 천지에 매일 자식을 하나씩 낳는 동물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 인간이 붉은 들닭을 수천년 동안 오로지 '알 낳는 기계'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닭은 어느덧 유전자 다양성이 

거의 완벽하게 결여된 '복제 닭'이 돼버렸다. 

비록 한가족이라도 어느 정도 유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지독한 독감 바이러스라도 가족 모두를 감염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닭은 한두 마리만 비실거리면 순식간에 닭장 전체로 번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한꺼번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붉은 닭의 해에 적통은커녕 가문의 명운이 경각에 달렸다. 

이번 닭의 해에는 영문도 모른 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떼죽음을 당하는 닭들의 수난사를 멈춰야 한다.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인 올해를 붉은 닭의 해로 부르는 이유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차례로 된 십간(十干) 중 하나인 정(丁)이 오행사상에서 붉은색을 뜻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열두 지지(地支) 중 하나인 유(酉)가 닭을 뜻하기 때문이다. 

육십갑자에 따라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