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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92] 나폴레옹과 톨스토이

바람아님 2016. 11. 8. 07:19

(조선일보 2016.11.0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물리학자 다이슨(Freeman Dyson)은 과학기술 연구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엄청난 장비와 경비를 필요로 하며 중앙집권적인 운영 체계를 갖춰야 하는 나폴레옹식 연구이고, 

또 하나는 작은 규모지만 창의력에 기반을 둔 톨스토이식 연구다. 

기술, 즉 응용과학 연구가 나폴레옹식이라면 기초과학은 대부분 톨스토이식으로 연구한다. 

다이슨은 물론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결같이 21세기 과학 발전은 톨스토이식 연구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이미 연구비의 50%를 기초연구에 할애하고 있다.


2016년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19조942억원이다. 

정부는 GDP 대비 비율은 세계 1위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비율이 중요한가? 1만원의 10%가 1000원이면 1억원의 10%는 1000만원이다. 

하버드대의 기부금이 40조원을 넘는다. 

남의 나라 대학 기부금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라 마음이 조급한지 자꾸 '선택과 집중'만 부르짖는다. 

그래도 그렇지 개인 연구자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기초연구비는 전체의 16%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전부 정부 주도의 기획 연구비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1994년 여름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르던 내 손에는 1993년 10월 15일자 '사이언스' 잡지가 

쥐여 있었다. '아시아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는 한국도 어느덧 기업의 연구 역량이 커진 만큼 

응용 연구는 기업에 맡기고 국민의 세금은 온전히 기초연구에 투자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15년 전 내 신문 칼럼에 국가 연구·개발비의 절반을 기초연구에 할당하라고 호소했다가 

얼빠진 사람 취급을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1300여명의 과학자가 기초과학 연구비를 1조1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려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내 귀에는 참으로 소박한 애걸처럼 들리는데 미래창조과학부는 난색을 표한단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 편히 개똥쑥이나 망가진 세포소기관 같은 걸 연구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