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상을 받고도 욕을 먹는 것처럼 섭섭한 일이 또 있을까?
매년 9월 말이면 맥아더재단이 펠로우를 선정해 발표한다.
일명 '천재상(Genius Grant)'이라 불리는 이 상을 받으면 5년간 아무런 꼬리표 없이 연구비
62만5000달러가 주어진다. 첫해인 1981년 수상자만 보더라도 전이성 유전인자를 발견한
바버라 매클린톡, 철학자 리처드 로티,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다중지능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줄줄이 포함돼 있었으니 가히 천재상이라 부를 만하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2003년에 수상했다.
이런 유명한 분들이 이 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또래 학자들이 하나둘 받기 시작하자
느낌이 사뭇 달랐다. 수상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우리의 옹졸한 입방아가 이어졌다.
"그 친구 어떻게 그런 연구를 해냈지?"라던 칭송이 하루아침에 "솔직히 천재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잖냐?"로 돌변했다.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의 음악은 그대로 한 편의 시라며 칭송하던 사람이 졸지에 그가 시인이냐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그가 받은 상은 '노벨시(詩)상'이 아니다.
딜런의 노벨상 수상은 문학의 정의와 범주에 날아든 마뜩잖은 도전장이다.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 논문과 윈스턴 처칠의 역사 기록물은 문학이지만
딜런의 노랫말은 아니란 말인가?
언어와 음악은 어쩌면 그 기원이 하나였을지도 모르는데.
시가 산문과 다른 건 시에는 음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시는 모두 리듬, 음절, 박자 등을 갖고 있다.
참, 시에서는 박자를 운율이라 하던가?
딜런의 '아직 어둡지 않아(Not Dark Yet)'에는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내 영혼은 강철로 변해가는 듯싶은데/ 태양은 여전히 내 상처를 아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내 귀엔 예사롭지 않은 시로 들린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157년 전 베르그송이 태어난 날이다.
공연히 어쭙잖은 논쟁에 끌어들여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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