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2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어쩌다 보니 분에 넘치는 학자 대접을 받고 살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 시절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기억이 없다. 툭하면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 가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한낱 핑계일 뿐 허송으로
세월을 축낸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이런 나한테 가르침을 받는 요즘 학생들은 나에 비하면 족히 열 배는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그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딱히 일할 곳이 없단다.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우리말 사전은 '직업'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종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한자로는 '직분(職)'과 '업(業)'이 합쳐진 말이다.
즉 '일자리'와 '일거리'가 한데 어우러진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전자에만 맞춰져 있다.
미래에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는 기계가 인간이 할 일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인간이 할 일이 거의 다 없어질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기계에 일을 맡겨 놓고 멍하니 지켜보거나 아예 신나게 노는 것도 일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생 인류의 존재 역사 20만년에서 첫 19만년 동안 해왔던 수렵·채집 생활이나 최근 1만년가량 해온 농경 생활에서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사냥 또는 채취를 위해 나설 때 누군가는 노약자를 돌본답시고 뒤에 남았다.
농사도 짓는 놈 따로, 거드는 놈 따로 있었다. 슬그머니 낮잠을 자는 놈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농땡이들을 굶기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는 있었지만 모두가 함께 생계를 유지했다.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청년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분석해보자. 이미 용어 선택은 제대로 했다.
취직률이 아니라 취업률이라 부르지 않는가?
이제 곧 국립생태원장직에서 퇴임하면 사회 초년생들의 미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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