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01 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오늘은 내 학문적 스승 두 분을 떠나보낸 날이다.
한 분은 1972년 오늘 돌아가신 불세출의 생태학자 로버트 맥아더(Robert MacArthur)이고,
또 한 분은 2015년 돌아가신 곤충학자 찰스 미치너(Charles Michener)다.
97세까지 장수하신 미치너 교수에 비해 맥아더 교수는 42세에 요절했으니 12년 늦게 태어나
43년 먼저 떠난 셈이다.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나는 '알래스카 바닷새의 체외 기생충 군집 생태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맥아더 교수와 훗날 하버드대 내 지도교수가 된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함께 개발한
섬생물지리학(island biogeography) 이론에 입각해 '날아다니는 섬' 새의 피부와 깃털에 붙어 사는 기생충의 생태를 분석한
연구였다.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에는 사회성 곤충을 연구했는데, 윌슨 교수는 1975년 그의 저서
'사회생물학'에 미치너 교수의 벌 행동 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윌슨 교수를 통했지만 두 분은 내 석·박사 지도교수와 다름없었다.
맥아더 교수는 내가 학문에 입문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논문과 책으로만 배웠지만,
미치너 교수님은 직접 뵙기도 했고 개인적 도움도 받았다.
미국곤충학회 연례회의에서 우수 논문 발표 경쟁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굳이 내 발표를 들으러 오셨다.
발표 직전까지 아무리 연습해도 주어진 시간 15분보다 2분가량이나 길어 막막했는데, 연단에 올라 막 발표를 시작하려는
순간 뒷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뭘 어떻게 떠들었는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12분 만에 발표를 마쳤다.
물론 상은 날아갔지만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를 도닥여주신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부음을 접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나도 후학들에게 그저 학문적 스승을 넘어 선생님 같은 삶의 스승이 될 수 있으려나.
오늘따라 선생님이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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