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2 김미리 기자)
혜곡 최순우 탄생 100주년 기념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展
물동이로 쓰였던 옹기동이.
겉면에 손가락으로 쓱쓱 즉흥적으로 그린 문양이
추상화처럼 간결하면서도 세련됐다.
담담하면서도 소박한 우리의 멋이다. /가나문화재단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한옥이 대거 허물리고 양옥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허문 한옥에서 나온 항아리, 주전자 같은 세간이 쓰레기가 돼 거리로 쏟아졌다.
이 와중에 버려진 물건을 수집한 이들이 있었다.
그 안목 덕에 버려진 물건은 고물(古物)에서 골동(骨董)으로 가치가 올라갔다.
그러다 골동이 '고미술'로 한 단계 더 격상되는 계기가 있었다.
1975년 광복 3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민예미술대전'.
하찮게 봤던 일상용품들이 박물관에 번듯하게 진열되면서 산수화·서예 같은
옛 그림 버금가는 문화재로 지위가 올라갔다.
우리 생활용품에 대한 인식을 한 번에 바꾼 이 전시를 기획한 사람은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혜곡 최순우(1916~1984)였다.
혜곡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 명저를 통해 한국의 미의식을 짚어내고 알린 선구자다.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를 한국 미술의 마음씨로 정의했고,
'수다스러운 듯싶어도 단순하고, 화려한 듯 보여도 소박한 동심의 즐거움'을 우리 공예의 특징으로 꼽았다.
혜곡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심미안을 잇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전이다.
가나문화재단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조선 시대 공예품 656점이 나왔다.
1975년 한국민예미술대전에 참여했던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가 총괄해 혜곡의 정신에 맞는 물품을 선별했다.
서민들의 일용품과 사대부가 쓰던 장식품이 고루 섞였고, 일부는 1975년 전시에 나왔던 작품이다.
종이 두루마리를 꽂아 두는 데 썼던 죽제지통(竹製紙筒)은 반으로 가른 대나무 7개를 이어 붙여 꽃잎 모양으로 입구를
만들었다. 조형적으로 두루마리 꽂히는 방향까지 계산한 것이다.
선비가 시린 손을 데울 때 썼던 작은 화로(手爐)는 철제은입사(鐵製銀入絲)로 만들었다. 작으나 기품 넘치고 옹골차다.
방한용으로 썼던 어린이 모자 '굴레'엔 한 집안의 역사가 스며 있다.
시인 김광균이 백일 때 쓰고 4대에 걸쳐 쓰고 있는 모자다.
쇠뿔 122개를 얇게 잘라 만든 판에 그림 그려 만든 화각장생문함(華角長生紋函)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쓱쓱 문양 그려 즉흥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옹기동이도 있다.
곱돌을 일일이 깎아 만든 곱돌약주전자에선 지금은 명맥이 거의 끊긴 돌 장인의 손맛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내년 2월 5일까지. (02)720-1054
혜곡 최순우 탄생 100주년 기념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展 2016/12월 15일 ~ 2017/02.05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
<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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